[인문사회]‘에도의 패스트푸드’…"초밥, 메밀국수는…"

  • 입력 2004년 6월 11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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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일본 에도거리에서 과일튀김 등을 파는 노점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1838년 간행된 '동도세사기(東都歲事記)' 중 '성하노상도(成夏路上圖)'. 사진제공 청어람미디어
19세기 일본 에도거리에서 과일튀김 등을 파는 노점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1838년 간행된 '동도세사기(東都歲事記)' 중 '성하노상도(成夏路上圖)'. 사진제공 청어람미디어
◇에도의 패스트푸드/오쿠보 히로코 지음 이언숙 옮김/284쪽 1만2000원 청어람미디어

맛있는 음식에는 시대의 행복이 반영된다. 식문화(食文化)는 한 시대와 지역이 쌓아 올린 생산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튀김(덴푸라), 초밥(스시), 메밀국수(소바), 어묵(가마보코) 등의 발명과 발전을 통해 오늘날 도쿄로 이름이 바뀐 에도(江戶)의 문화사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에도 특유의 음식문화가 덴메이(天明)시대(1781∼89년) 이후 흥성기를 맞았으며, 조닌(町人·도시 상공업자) 계층의 양적 증대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분석한다. 왜 유독 초밥, 메밀국수, 튀김 등일까.

이 음식들은 포장마차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패스트푸드’였다. 여러 차례 큰 화재를 겪어 복구사업이 끊이지 않던 에도에는 목수 등 장인이 많았고, 시간에 쫓기는 독신남들에게는 길에서 쉽게 사먹는 음식이 안성맞춤이었다. 밥만 있으면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테이크 아웃’ 반찬도 사랑 받았다.

조닌 계층의 경제력 향상 역시 ‘일본식 패스트푸드’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정치경제적으로 평온했던 19세기의 에도는 이미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였다. 당시 70만명이던 런던의 인구보다 훨씬 많았다. 번화가마다 거리공연과 연극, 씨름, 노름판이 벌어졌으며 다양한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등장했다. 근엄한 무사가 개에게 튀김을 도둑맞는 해학적인 그림이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패스트푸드’만으로 에도 요리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 머릿속에 ‘지극 정성’과 ‘세공’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일본 요리의 전통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당연한 의문이다. 19세기 초에 이미 ‘빨리 나오는 요리’의 성장과 더불어 경제력 향상에 걸맞은 사치스러운 요리도 등장한다.

허영심에 들뜬 조닌들이 있는 돈을 모두 들여 맏물(제철에 처음 나오는) 가다랑어를 사들여서 품귀현상을 빚는 일이 빈번해진다. ‘에도 사람들은 콩이 언제 나는지 감자가 언제 열매를 맺는지 몰라. 사계절 돈만 내면 살 수 있으니’라는 풍자가 등장할 즈음 무사와 부호들 사이에서는 고급 정식인 가이세키(會席) 요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급으로 치닫는 신흥 미식가들의 욕망 속에서 요리사들은 칼질, 담아내기 등에 세공을 더하며 ‘일본 요리는 눈으로 먹는다’는 전통을 탄생시키게 된다.

외견상 객관적인 서술에 충실하려 애쓰는 저자의 글쓰기에는 향토문화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우리가 무심코 집어 드는 어묵과 초밥, 튀김에는 상공업 발전과 고도의 생산력을 바탕으로 지배계층 못지않은 여유를 누렸던 이웃 나라 시민계급의 풍요로운 삶이 투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김 한 장, 메밀국수 한 오라기마다 그 기원과 발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일말의 질투심마저 안겨준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식문화에는 우리 삶의 어떤 모습이 반영되어 있을까. 21세기 초의 ‘불량 만두 파동’을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한 시대의 에피소드 정도로만 웃어넘길까.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에도 패스트푸드의 이모저모

▽초밥(스시)=최초의 초밥은 생선 뱃속을 깨끗이 손질해 속을 밥으로 채워 무거운 돌로 누른 ‘나레즈시(なれずし)’였다. 발효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없을까 궁리한 끝에 아예 밥에 식초와 소금으로 간을 해버리는 ‘하야즈시(はやずし)’가 생겼고, 돌로 눌러두는 시간조차 기다릴 수 없게 되자 1820년경 밥을 손으로 뭉친 뒤 신선한 해산물을 올리는 ‘니기리즈시(にぎりずし)’가 탄생했다.

▽메밀국수=메밀국수가 언급된 최초의 기록은 1614년 등장한다. 그 전에는 메밀로 수제비나 죽을 만들어 먹었다. 메밀국수 국물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는 에도시대 중기부터 만들어졌는데, 1674년 도사(土佐)지방에서 오늘날과 같이 훈제를 한 가쓰오부시가 탄생했다.

▽튀김(덴푸라)=포르투갈 또는 네덜란드에서 전래된 외래 음식이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그 기원과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처음에는 밀가루만을 씌워 튀긴 밋밋한 맛이었으므로 무즙과 튀김 간장에 찍어 먹게 되었다. 18세기 중반 시코쿠(四國) 지방에서 설탕 생산에 성공한 후 일본 음식의 양념은 점차 달아지게 되었다.

▽어묵=으깬 생선살을 꼬치에 말아 구운 어묵은 절구가 보급되면서 발달한 요리.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 쇼군(將軍) 등 지배층에 핵심적인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했다. 상류층 부인들이 식사를 준비할 때는 어묵을 만드는 전문 요리사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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