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7년 獨 루스트, 모스크바 착륙

  • 입력 2004년 5월 27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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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예 크렘린궁 안으로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든 공개적인 장소에 비행기를 내려야 했다. KGB가 두려웠다….”

구소련이 아직은 ‘악의 제국’(레이건)이던 1987년 5월 28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신사고(新思考) 외교가 막 시동을 걸고 있던 때에 불청객이 날아들었다.

독일의 19세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

그가 세스나 경비행기를 몰고 ‘철의 장막’(처칠)을 넘어 모스크바 심장부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는 보란 듯이 붉은 광장을 세 번이나 선회한 다음 크렘린궁 담장 밖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세계 언론은 “소련의 방공망이 아마추어 비행사의 저공(低空)비행에 뚫렸다”고 대서특필했다. 더욱이 그날은 마침 소련 국경수비대 창립 기념일이었으니.

이 사건으로 국방장관과 방공사령관이 파면된다.

그러나 소련의 방공사령부가 루스트를 놓친 것은 아니었다. 소련 영공에 진입하기 훨씬 전 비행기는 레이더에 포착됐고 소련 전투기가 두 차례나 출격했다.

그런데 왜 요격하지 않았을까. 4년 전 악몽 때문이었다.

1983년 9월 소련은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 KAL 007 여객기를 격추시키는 바람에 거센 국제적 비난에 휘말렸다.

루스트는 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432일 만에 풀려난다. 프라우다는 그가 ‘자살공격’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그는 왜 이 “어처구니없고 무모한 비행”(서독 정부)을 감행했을까.

그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젊은이였다.

동서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미소정상회담은 그를 흥분시켰다. “냉전 해소를 위해 뭔가 상징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고르비는 훗날 “그 회담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의 평화가 있다”고 회고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루스트는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그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집안에서 칩거하다시피 지내던 그는 1989년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다시 뉴스를 탄다.

병원 탈의실에서 키스를 거부하는 간호사에게 그만 칼부림을 하고 만 것.

그때 정신감정을 맡은 의사의 소견. “정상은 아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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