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11분’… ‘절정’까진 11분 ‘구원’까진 몇분?

  • 입력 2004년 5월 14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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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는 소설 ‘11분’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렇게 썼다. “갑자기 내 안에서 빛이 폭발했다. 그것은 11분이 아니라 영원이었다.” 사진제공 문학동네
파울로 코엘료는 소설 ‘11분’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렇게 썼다. “갑자기 내 안에서 빛이 폭발했다. 그것은 11분이 아니라 영원이었다.” 사진제공 문학동네

◇11분/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351쪽 9500원 문학동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56)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반(反)독재 록 음악을 만들었다가 투옥되기도 하고, 만화가 극작가 기자생활을 거쳐 작가가 됐다. 1988년 펴낸 소설 ‘연금술사’가 53개 언어로 번역돼 2700만권가량 팔려나가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한번쯤 ‘섹스’를 테마로 소설을 쓸 생각이었는데 1997년 이탈리아에서 강연한 후 한 창부로부터 습작 원고를 받게 됐다. 이 일이 인연이 되어 그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인회를 열자 그곳 창부들이 찾아와 그의 책을 펼쳤다. 거기서 그는 ‘11분’의 줄거리를 제공할 창부를 만났다.

미국 작가 어빙 월리스는 섹스의 평균시간을 제목 삼아 ‘7분’이라는 소설을 1970년대에 펴냈다가 출판 금지된 바 있다. 코엘료는 “7분은 너무 인색하다”며 4분 더 늘려 잡아 제목으로 정했다. 이 소설은 지난해 나와 유럽 등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37개 언어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코엘료는 소설의 사실성을 비치기 위해 이야기의 줄거리를 제공한 창부(뒷모습)와 자신이 제네바 꽃시계 앞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고, 소설에 제네바의 거리 지도를 넣기도 했다. 소설에는 창부들의 입문(入門), 하룻밤 파트너와의 코스, 창부사회의 경쟁심, 매춘의 간략한 역사까지 제공돼 독자의 관음증을 부채질한다.

이야기는 브라질 시골 출신으로 리우데자네이루를 거쳐 제네바의 최고급 댄스홀 ‘코파카바나’로 흘러들어온 스무 살 여성 ‘마리아’를 통해 전해진다. 어린 시절 잇따른 실연으로 절망한 마리아는 순수한 본성을 가졌지만 ‘섹스산업의 역군인 남성 사업가’들의 꾐에 체념적으로 빠져들면서 ‘성적 모험이 가득한 롤러코스터’에 타기로 한다. 물론 그녀를 움직인 가장 큰 유혹은 (부모님께 농장을 사드릴 수 있는) 큰돈을 쥘 가능성이다.

그녀가 남자들을 겪을수록 얻는 것은 이런 깨달음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삶을 살고 있구나. 나 역시 운명이 나를 결정하게끔 내버려 두리라.” “이렇게 반듯한 남자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고독하다니. 창부 앞에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연출까지 하다니.”

그녀는 창부로서 완숙해질 무렵 두 명의 남자를 만난다. 하나는 많은 화대를 주는 대신 그녀를 채찍과 수갑으로 다루려 들고, 다른 하나는 그녀로부터 “빛을 보았다”고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하며 다가서는 화가다. 그녀는 몇 차례 의심 끝에 화가에게 사랑을 느끼는데 어느 날 그녀의 손목에 남은 ‘수갑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 소설 앞부분 60%는 ‘베드신’을 절묘하게 건너뛰어 ‘15세 이상 관람 가’ 수준을 확보했다. 하지만 ‘사도 마조히즘’이 고개를 쳐드는 뒷부분은 아무래도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것 같다. 섹스를 “생식기의 포옹”, 성감대인 G스폿 위치를 “현관을 지나 바로 머리 위 천장” 하는 식으로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도 그렇다.

코엘료는 각 장 끝부분에 ‘마리아의 일기’를 넣어서 사랑과 섹스, 인생과 운명, 오르가슴과 행복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이것이 이 소설을 통속소설 수준에서 아슬아슬하게 중간소설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한 창부가 고단한 여로 끝에 어떻게 소박하면서도 순수한 구원의 길을 찾아내는가가 이 일기를 통해 드러난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다. 그러나 11분 만에 읽기는 힘들 것 같다. 7분 만에는 더더욱 그렇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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