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軍비리 익명제보 탓하기전에…

  • 입력 2004년 5월 12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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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름 없는 제보는 절대로 수사하지 않겠다.”

조영길(曺永吉) 국방부 장관은 11일 신일순(申日淳) 육군대장의 구속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익명의 비리제보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조 장관은 신 대장 외에 또 다른 현역 A대장에 대한 비리제보 접수 사실을 밝히며 “모든 수사력을 동원해 반드시 진위를 밝히겠지만 비겁한 행위에 군이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무기명 제보자는 자신의 충정이라고 하지만 남을 고발하고 음해하는 것은 건강한 조직도, 건강한 사회도 아니다”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조 장관의 발언은 물론 익명의 비리제보가 군내의 기강해이로 이어질 것을 걱정한 발언이었고 그런 점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현역 대장 구속이란 전례없는 사태를 맞아 군비리 척결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기대했던 취재진으로서는 본말이 전도된 발언이란 점에서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조 장관은 이날 익명의 고발자에게 강한 ‘경고’를 보내면서도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는 질문엔 명확한 답변도 하지 않았다.

사실 폐쇄적인 군의 특수한 조직문화에선 ‘떳떳한 기명 제보’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제보자의 신원이 드러나면 다른 부처에선 인사상 불이익 정도를 받고 말지만 군에선 이런 저런 이유로 전역까지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군 비리 관련 제보 중 상당수가 군 수사기관이 아닌 부패방지위원회 등에 접수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군에 내부고발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시정해야 할 비리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이 중엔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아온 것들도 적지 않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로부터의 단절’이야말로 국민들이 군에 기대하고 있는 점이다.

군의 잇따른 비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냉랭한 시각을 조 장관이 조금이라도 인식했더라면 익명의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에 앞서 고질적인 비리를 도려내겠다는 의지를 보였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최호원 정치부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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