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조인직/“강남 사는게 무슨 죄인가요”

  • 입력 2004년 4월 22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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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집 사고 파는 사람들이 무슨 ‘공공의 적’이라도 됩니까. 여기라고 뭐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 있나요.”

21일 서울 강남구청 지적과는 주택거래신고제 지정 소식이 전해지며 서둘러 계약서 검인을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예상대로 ‘정부가 또 강남 죽이기에 나섰다’는 피해의식을 더 많이 갖고 있는 듯 보였다.

20일 개포동 중개업소에서 만난 한 주부는 “애들 학교 때문에 이곳을 택했다. 앞으로 취득세 등록세 낼 돈 없는 사람들은 강남에 발도 붙이지 말라는 건지 뭔지 정부 정책의 의도가 헷갈린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의 조치는 필요한 것이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재건축 단지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의 ‘구매심리’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전에 시행했던 대책보다 참신한 면이 있어, ‘약발’이 기존의 대책들보다 나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그러나 정책이 지나치게 직선적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진입장벽이 높아질수록 강남권의 물밑 수요가 더 늘어난다는 점을 간과한 부분이 크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마치 백화점 명품숍에서 물건을 하나씩 빼놓고 예약주문을 받으면 인기가 더 높아지는 효과와 비슷하다. 수요는 일정한 데 공급만 줄여놓으니 가격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강남 중산층’은 어느새 세금부담을 견딜 수 있는 ‘상류층’으로 물갈이가 되고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가장 ‘시장주의적인 대책’만이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강남권에 무제한으로 재건축을 허용하면 공급초과로 밀도가 높아지고, 교통이 불편해지고, 결국은 입지여건이 나빠져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주택거래신고제는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서 공급조절까지 해 주고, 돈 많은 사람들만 들어오도록 ‘물 관리’까지 해 준다는 이면(裏面)이 있다는 것이다.

조인직 기자 cij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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