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세대 갈등은 없다

  • 입력 2004년 4월 16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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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흐뭇한 광경을 목격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청년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아마도 얼굴빛이 창백하고 몸이 불편해 보이는 그 청년이 몹시 안돼 보였던 것 같다.

기성세대는 절대 자기 것을 안 내놓는 것으로 젊은이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고정관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대학과 구호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는 사람들은 거의 노인이다. 못 배운 설움, 배고픈 고통을 어느 세대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역으로 젊은 세대에 대해 기성세대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과 기성세대 사이에 감지되는 불편한 긴장감도 서로 악수를 하며 등을 두드리듯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 지우기’와 화해 ▼

최근 들어 선거에서 세대 갈등이란 단어가 자주 거론되지만 한국 정치의 특징 중 하나일 뿐이며 이 또한 부풀려져 있다. 어제 총선결과를 놓고 보더라도 한나라당이 영남에서,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의석을 독점한 것은 지역주의의 연장이지, 세대 대결의 시각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행정수도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충청권에서 이 공약을 내놓은 열린우리당에 많은 지지를 보낸 것도 세대 갈등과 관련짓기 어렵다. 지역색이 상대적으로 옅은 수도권에서는 진보, 보수를 나누기 이전에 ‘차떼기당’ 등 정치인의 부패에 대한 혐오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국회의원을 뽑기는 해야 하는데 ‘최선(最善)’은 안 보이니까 어쩔 수 없이 ‘차선(次善)’을 택한 표심이다.

세대 갈등은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不和)’에 비유되곤 한다. ‘오이디푸스’ 같은 서양 신화에도, 한국의 소설에도 ‘아버지 지우기’의 사례는 등장한다. 문학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아버지 부정(否定)’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진통이다. 젊은이들은 훗날 아버지의 자리에 섰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 이처럼 세대 갈등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삶의 과정이다.

역사적 체험이 확연히 다른 아버지와 자식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문제는 우리의 세대 격차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농경세대와 디지털세대는 사실 엄청난 차이다. 그렇더라도 디지털혁명은 다른 나라도 같은 사정일 텐데 왜 유독 우리만 이슈가 될까.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를 강조하는 가부장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고,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대화와 토론의 부재(不在)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60, 70대는 집에서 쉬시라”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발언에서 나타나듯이 세대 갈등이란 담론이 정치적 의도로 부추겨지는 탓이 더 크다. 자세히 보라. 세대 갈등이란 말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크게 늘었다. 참여정부의 ‘편 가르기’는 상당부분 ‘세대 가르기’의 다른 표현이다. 이런 얄팍한 선거와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여당이 주류 교체를 들먹이며 기성세대를 분리하는 선거 전략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이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4, 5년마다 한 번씩 치러지는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 가운데 젊은층은 갈수록 줄고 장노년층은 늘어갈 것이다. 세대를 함께 아우르는 것은 사회정의 이전에 정당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먼저 악수를 ▼

세대 격차는 있어도 세대 갈등은 없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모두가 세대 차이를 절감하는 것 자체가 세대 화합을 위해 벌써 ‘절반의 성공’이다. 과거엔 아예 차이를 모르거나 눈감아 왔던 것 아닌가. 각 세대가 장점을 살려 조화를 이루면 사회발전의 동력이 된다. 세대 격차는 플러스이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누가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손을 내미느냐는 것이다. 어려워도 그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포용해야 한다. 어쩔 것인가. 젊은이들이 우리의 후손이요, 미래인 것을.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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