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스페인-대만 선거로 본 ‘민심’

  • 입력 2004년 3월 31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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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치러진 대만 총통선거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결과로 끝났다.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 결과는 대체로 국민당과 친민당의 야당연합이 승리하리라는 것이 대세였다.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재선되면 중국과 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본토에서 사업을 하는 대만인 10만여명이 투표를 위해 귀국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 하루 전 발생한 피격사건으로 천 총통은 적지 않은 동정표를 얻어 당선됐다.

하지만 야당이 피격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며 당선 무효소송을 제기했고, 많은 국민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어 후유증은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50여만명이 참여한 항의집회가 열렸고 형제마저 지지정당에 따라 갈라서는 비극적인 분열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본토 출신’과 ‘대만 출신’을 갈라 극단적인 지역감정을 조장한 결과이다. 나라의 장래보다는 당장의 승리를 탐한 정치인들의 이기심이 국민을 두 동강 낸 것이다.

지난달 14일 있었던 스페인 총선 역시 당초 집권 국민당(PP)이 무난히 이길 것으로 예상됐다. 선거 전 20일간 여론조사에서 국민당은 사회노동당보다 꾸준히 4∼10%포인트를 앞섰다. 그러나 결과는 사회노동당의 승리였다. 선거 사흘 전 발생한 마드리드 폭탄 테러와 이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처리가 민심의 물줄기를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았다.

스페인 집권당의 패배는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면서 미국 일변도 외교정책을 펼친 것도 작용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거짓말이 결정적 이유였다. 정부가 테러의 배후를 바스크 분리주의자의 소행으로 몰아가려는 섣부른 시도만 하지 않았어도 총선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국민이 진짜 화가 났던 것은 이라크전쟁을 지지한 친미정책 자체보다는 이러한 정책이 테러를 불렀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국민을 속이려 했던 기만행위였다. 대중은 때로 정치인의 여론조작이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기도 하지만 일단 거짓이 들통 나면 정권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페인 총선은 보여준다.

민심은 무서운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을 끌어대지 않더라도 정치인에게 민심은 존재 기반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만과 스페인에서 보듯이 조금만 잘못 다뤄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변하는 것이 민심이다. 이 다루기 힘든 민심을 어떻게 어루만져 주느냐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이라는 직업의 본질일 것이다.

6년 전 지방선거에서 22개 주 가운데 14개 주에서 이기고 2년 전 대선에서도 승리했던 프랑스의 집권 우파는 지난달 29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20개 주를 빼앗기는 참패를 당했다. 공공분야 개혁에 대한 저항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개혁을 하겠다는데 패배를 안기다니…. 민심은 이렇게 읽기 어려운 것이다. 권력의 맛에 취해 자신이 민심의 대리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민심은 그 정당과 정치인을 떠난다.

총선을 보름 앞둔 한국도 탄핵정국으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민생투어란 이름으로 민심 어루만지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민심은 진실로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진정성의 유무까지도 알아차린다는 사실을.

김상영 국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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