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차지완/‘FTA’가 남긴 교훈

  • 입력 2004년 2월 17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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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득표만 의식해 국익을 외면한 정치인에 대해서는 낙선(落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16일 오후. 한 통상전문가는 FTA 비준의 의미와 전망을 묻는 기자에게 이같이 반문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이 네 차례 시도 끝에 ‘마침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정치권의 행태가 특히 그랬다. 이례적으로 ‘실명(實名)을 걸고’ 강도 높게 비판하는 통상전문가가 많을 정도다.

최낙균 대외경제연구원(KIEP) 무역투자정책실장은 “20여명의 ‘농촌당’ 출신 의원만 뭇매를 맞고 있으나 그동안 ‘묵시적 방조’를 한 나머지 의원에게도 공동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칠레 FTA는 총체적 국익이란 점에서 득실이 명백했다. 하지만 이런 사안에서조차 총선에서의 표에 집착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정치인이 많았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FTA는 양자(兩者)간 무역협상이다. 이득과 피해를 보는 집단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종합적인 국익이다.

‘피해자’는 협상 상대국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이번 한-칠레 FTA비준 과정에서 농민이 ‘피해자’였다면 앞으로 어떤 협상에서는 기업이나 노동계가 부담을 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이번 비준안 처리를 위해 마련한 농촌지원대책이 앞으로 협상 때마다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목소리 높은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상당기간 압도했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한-칠레 FTA 비준 과정에서도 비준안 부결이나 무산에 따른 후유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여러 차례 진통을 겪은 것은 ‘비준 반대’를 주장하는 국회의원과 농민단체 등이 분위기를 장악했기 때문이 아닐까.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대외 협상에서는 ‘미국에 큰소리칠 수 있다’는 식의 ‘소신파’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각종 통상문제와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차지완 경제부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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