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복수혈전(復讐血戰)'

  • 입력 2004년 2월 2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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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胡)씨 성을 가진 중국의 한 청년(27)이 20년 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무술을 연마해 일곱 살 때 아버지를 구타해 죽게 한 원수의 일가 3명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한다. 이번 설에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후 청년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와신상담(臥薪嘗膽)’ ‘복수를 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 ‘피로 원수의 집안을 물들이자’는 문구를 찾아냈다고 한다. 마치 중국 무협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부모와 스승 또는 연인을 죽게 한 원수에 대한 복수는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문화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로미오와 줄리엣’ ‘검은 고양이’ 같은 문학작품과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일본의 가부키 ‘47인의 낭인(浪人)’ 등이 복수를 소재로 한 명작이다. 영화의 경우 잉마르 베리만의 ‘처녀의 샘’을 비롯해 ‘메멘토’ ‘킬빌’ ‘갱스 오브 뉴욕’ 등 유명 외화와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등 국내 화제작들이 처절한 복수극이다.

▷최근 들어서는 복수의 방식과 양태가 훨씬 조직화 집단화 거대화되고 있다. 알 카에다의 9·11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문명 대 문명의 복수극, 조류독감과 광우병은 인간에 대한 동물의 복수혈전이나 다름없다.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환경의 역습 또한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자연의 복수다.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역사 바로세우기’와 ‘세무사찰’, 그리고 현 정권이 도모하고 있는 ‘지배세력 교체’ 또한 시대와 이념에 대한 일종의 복수극이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기 마련이다.

▷현자(賢者)들은 ‘눈에는 눈’ 식의 복수를 저급한 복수로 간주하고, 용서와 사랑을 가장 높은 복수로 평가한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복수는 ‘무시(無視)’다. 버림받은 여인보다 더 비참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인 것이다. 유대인의 지혜가 담겨 있는 탈무드는 “잘살아라. 그게 최대의 복수다”라고 적고 있다. 감각의 귀재인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나를 괴롭힌 이들에게 복수하는 것은 오직 내가 행복하게 사는 일”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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