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욕망과 질투의 범람

  • 입력 2004년 1월 16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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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도언은 가족이 해체되고 개인이 고립되는 사회에서 빚어지는 ‘질투’의 불안한 징후를 형상화한다. 사진제공 이룸

작가 김도언은 가족이 해체되고 개인이 고립되는 사회에서 빚어지는 ‘질투’의 불안한 징후를 형상화한다. 사진제공 이룸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김도언 지음/352쪽 9000원 이룸

1990년대 이후 우리 소설의 영역에 침입한 풍경의 하나로 ‘가족 해체’를 든다면 새롭거나 낯선 일은 아니다. 기존의 가족은 붕괴되고, 단절된 개인들은 단절 그 자체를 향유하거나 계약도 언약도 없는 ‘신(新)가족’을 형성한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 김도언(31)의 첫 창작집인 이 책의 주인공들 또한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임의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신가족’의 작은 군집으로 살아간다. 독자는 ‘새로운 가족’이 풍기는 불온과 불안의 냄새를 맡게 된다.

가족의 강한 연결고리가 와해된 개인들 사이에 범람하는 가장 음험한 불온의 모습은 ‘질투’로 나타난다.

‘부주의하게 잠든 밤의 악몽’에서 주인공은 멀쩡히 볼 수 있는데도 실명(失明)을 가장한다. 주인공의 연하 애인은 집안에 다른 여자를 끌어들여 숨을 죽이며 정사를 벌인다. ‘픽션, 섹스, 비디오’의 주인공은 연인이 연예인으로 성공한 뒤 자신을 멀리하자 그녀에게 보복하기 위해 두 사람의 정사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표제작인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에서 질투는 외견상 억제된다. 그러나 찬찬히 풀리는 주인공의 내면 풍경에서 질투는 오히려 위험한 공기처럼 주변을 둘러싼다. ‘나’의 작은 화실에 ‘이명’이란 여성이 우연히 들어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이명은 나와 다른 세계에 속한다. 나는 그 세계에 속할 수도 없고 이명과 그들의 관계를 제지할 수도 없다.

가족을 이루던 과거의 질서는 어디로 갔는가. ‘고딕(gothic)가족’에서 작가는 마침내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네 명의 노인과 아버지, 오누이만이 존재하는 이 가족은 기존의 가족이 주는 중압과 부자유만을 원심분리해 추출한 것 같은 극단적인 ‘반(反)’가족일 뿐이다.

책의 중심을 이루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서 가족의 해체 양상은 더욱 명백하다. 부모가 사고로 죽었지만 주인공에게 아버지는 ‘야구 중계방송 전이나 도중이 아니라면 언제 죽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 존재일 뿐이다. 형은 놀이공원에서 만난 소녀를 집에 데려오고, ‘나’는 그와 관계하려 하지만 형의 거대한 성기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꿈에서 주인공은 형의 성기를 떼어 붙인 뒤 돌려주기가 싫다. 주인공은 마침내 형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왜 이 주인공들에게는 질투가 이토록 범람하는 것일까. 가정이라는 성(城) 안에서 규격화된 욕망에 안주하던 개인은 사라져 가고 임의의 계약이나 묵인으로 형성된 관계가 가족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대체한다. 이제 개인 사이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조건은 자유로운 욕망이다. 욕망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고, 욕망이 새로운 대상을 찾아나갈 때 그 탐색의 엔진은 질투를 연료로 움직인다.

관계 해체의 시대에는 질투가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이 된다는, 다른 이들이 잊고 있거나 또는 애써 밀쳐두려 하는 사실을 이 작가는 보란 듯이 꺼내놓았는지도 모른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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