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차 번호판

  • 입력 2004년 1월 13일 18시 06분


코멘트
디자인의 중요성은 꽤 널리 인식되어 있다.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거나 ‘디자인을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표어가 전혀 낯설지 않다. 달리 말하면 미(美)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안목이 일정수준에 올라 있다는 얘기다. 명품(名品) 선호현상이 내실보다 외형에 매달리는 세태로 비판받고 있지만 디자인산업의 측면에서는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디자인산업이 성장하려면 국민이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을 식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한데 우리도 미적 감각에 차츰 눈을 떠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자동차 구매자들은 20%가 디자인을 보고 차를 선택하지만 신차 개발비 중에서 차 디자인에 쓰이는 돈은 몇 %에 불과하다. 디자인의 부가가치가 엄청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자주 쓰이는 비교다. 사실 우리에게 디자인 육성은 이보다 훨씬 절실한 과제다. 중국의 디자인이 우리를 맹추격해 오고 있고 선진국의 벽은 거의 ‘철옹성’ 수준이다. 한국의 디자인이 세계를 매료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가 중진국을 벗어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문제는 디자인 향상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디자인은 그 나라 문화수준과 같이 움직인다. 어릴 적부터 청소년에게 예술적 감각을 길러주는 국가는 좋은 디자인을 창출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처럼 불철주야 입시공부에 매달리는 나라는 국민이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울 시간과 여유가 없다. 우리 디자인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큰 성장을 이뤄내긴 했지만 ‘외국 것 모방하기’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연초부터 바뀐 자동차 번호판의 디자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유치하고 촌스럽다는 것이다. 뒤늦게 이를 인정한 당국이 새 디자인으로 교체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공무원이 누구보다 앞서가야 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하는데 그 수준이 일반 국민보다 못한 것 같아 실망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우리의 전통 디자인은 세련되고 우아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었다. 공무원들이 시간 날 때 박물관이라도 찾아가 우리 선조들의 미적 감각을 익힌다면 우리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키우는 데 최소한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 같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