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절대, 그 이후'…종교간 공통언어가 필요한 이유

  • 입력 2004년 1월 9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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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 이후:종교 간 대화의 미래/레너드 스위들러 지음 이찬수 유정원 옮김/416쪽 1만8000원 이화여대출판부

저자(미국 템플대 교수·종교학)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에큐메니컬 에스페란토(Ecumenical Esperanto)’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태도가 요청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에큐메니컬 에스페란토’란 종교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공통 언어를 상징한다.

‘에큐메니컬 에스페란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더 이상 자기 신앙의 독선적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자기 신앙에 관한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된 배경에는 진리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놓여 있다. 그동안 서구에서 지배적이었던 진리관은 고정불변한 유일무이의 진리, 그리고 ‘이것 아니면 저것’식의 양자택일적이고 정적(靜的)인 진리였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이것인 동시에 저것’식의 상호관계적이고 역동적인 진리관 앞에서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됐다. 이 경우 유아독존의 자폐(自閉)적인 태도 대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다른 관점을 인정하고 배움을 청하는 태도다.

종교간 대화는 ‘너도 옳고 나도 옳으니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식의 상대주의적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름 속의 비슷함’ 혹은 ‘비슷함 속의 다름’을 주장하며 타자로부터 배워 끊임없이 성장하는 자신을 상정한다. 하지만 그 성장의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제시돼 있는 대화의 열 가지 규칙에 따르면 대화는 일방적 정복이나 훈계의 태도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대화는 동등한 위치의 상대방이 상호 신뢰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에 대한 이런 자세가 너무 이상(理想)적인 것은 아닌가? 자기 신앙만이 유일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며 다른 신앙을 저주하는 이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다는 걸까? 저자는 대화주의자들이 이런 외곬의 절대주의자들에게도 배울 바가 있으며 끊임없이 공감적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가? 짐작컨대 그것은 아마도 폐쇄적 독선주의의 심연에는 위로받지 못한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신앙인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그 사나운 눈빛이 위로받지 못한 그들의 깊은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종교학 skmjang@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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