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事必歸正'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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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사자성어 목록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있다. 돈과 관련돼 이러저런 오해를 받다가 억울함이 해소됐다고 판단했을 때나, 다툼이 치열했던 송사에서 상대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등에 쓰는 ‘문자’다. 진승현씨에게서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7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재판 직후 “한마디로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9월 ‘안풍’ 재판 1심에서 강삼재 의원에게 유죄가 선고되자 한나라당은 ‘정치재판’이라고 반발했지만 민주당과 통합신당(열린우리당)은 ‘사필귀정’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당 정대철 의원도 엊그제 그런 말을 사용했다. 자신이 대선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 중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강금실 법무장관이 “검찰에선 수사한 적이 없다”고 답변하고 난 직후다. 정 의원은 “집권 이후 대선자금이니 뭐니 하며 하루도 사람을 그냥 두지 않았다. 마치 후원금이나 유용하는 사람처럼 몰아가는 것은 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며 “결국 사필귀정이 아니냐”고 말했다. 오해를 벗어났다는 홀가분한 마음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정치인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때로는 실명이고 때로는 이니셜이다. 어제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여야 의원 4, 5명이 대선자금을 유용한 단서를 검찰이 포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인의 이름이 나오는 보도가 있을 때마다 누명을 썼다며 억울해 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게 세상의 이치다.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사필귀정’의 철학이다.

▷하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삶은 오해나 누명을 받을 수 있는 소지를 미리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정치판에는 소리 소문 없이 돈이 오갔고 따라서 뒤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아무리 조그만 돈을 받아도 그것이 불법 편법으로 이루어졌으면 결국 드러나고 만다. 부정 비리 의혹이 속속 들추어지고 있는 지금의 검찰수사가 이를 증명한다. 이것도 ‘사필귀정’인 것이다. 이제 이 땅에서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어떤 경우에도 부정부패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내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진정으로 좋은 정치란 누구의 입에서도 ‘사필귀정’이란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정치가 아닐까.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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