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박물관 간다'…'한국의 美'를 만난다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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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이 추구한 아름다움 중 ‘따사로움’의 사례로 꼽히는 조선조 화가 이암의 ‘어미개와 강아지(母犬圖, 국립박물관 소장). 묘사력이나 기량과는 별개로 분위기 포착을 중시하는 동양 옛 그림의 전통을 잘 드러냈다.사진제공 효형출판
선인들이 추구한 아름다움 중 ‘따사로움’의 사례로 꼽히는 조선조 화가 이암의 ‘어미개와 강아지(母犬圖, 국립박물관 소장). 묘사력이나 기량과는 별개로 분위기 포착을 중시하는 동양 옛 그림의 전통을 잘 드러냈다.사진제공 효형출판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이원복 지음/268쪽 9500원 효형출판

방학 때면 숙제 하려는 초중고교생들로 붐비는 박물관. 친구들과 웃고 장난치며 금관과 도자기, 풍속화 앞을 지나는 동안 자신이 지금 전시된 유물들을 통해 수백년의 시간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학생들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 유물들과의 ‘통역’을 맡아준다면 어린 학생들이 시간의 지층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기가 더 쉽지 않을까.

국립광주박물관 관장인 저자는 그런 ‘통역자’의 입장에서 책을 썼다. 1997년 같은 제목으로 펴낸 책의 개정판이지만 이번에는 통역 대상이 다르다. 청소년 독자들을 1차 독자로 고려한 것. 김홍도, 임희지가 함께 그린 ‘죽하맹호(竹下猛虎)’ 같은 그림의 제목을 ‘대나무 아래 늠름한 호랑이’처럼 한글로 풀고 서술을 평이하게 했다.

저자는 ‘함초롬함’ ‘자연스러움’ ‘끼끗함’ ‘담백함’ ‘올곧음’ 등 옛 사람의 미학과 생활태도를 드러내는 67가지 주제어를 고르고, 그 주제어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유물 한 점씩을 들어 설명한다.

‘함초롬함’ 편에 소개된 것은 청소년들조차 너무나도 눈에 익숙한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瓷象嵌雲鶴文梅甁)’. 12세기 중엽 만들어진 이 술병이 ‘가지런하고 고운 것’이라는 뜻의 함초롬함의 사례가 된 이유는 그릇에 새겨진 학 무늬의 ‘질서’에 있다. 병 표면에 새겨진 희고 검은 원 안의 학들은 예외 없이 목을 45도로 올려 비상하고 있고, 원 밖의 것들은 일제히 목과 다리가 수평에서 45도 아래로 하강하고 있다. 얼핏 보기엔 100여마리의 학이 복잡하게 그려진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가지런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의 통역은 옛것에 담긴 의미를 풀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선조 선비화가 신명연(1809∼1892)의 채색화 ‘양귀비’를 예로 들어 ‘화사함은 무엇인가’를 설명하며 저자는 이런 소감을 덧붙인다.

‘스스로 귀한 존재임을 깨닫는 자존은 교만이 아니며, 까닭 없는 병적인 비하는 겸손이 아니다. …일부러 꾸며서가 아니라 안에 깃든 참된 것들이 꽃향기처럼 자연스레 드러날 때 우리는 화사하게 바뀌며 아름다움의 주인공이 된다.’

“예쁘고 싶어” “멋지고 싶어”라는 열망을 품고 TV와 광고에 등장하는 스타들을 흉내 내는 청소년들에게 저자는 옛것을 통해 ‘아름다움은 이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늠름(凜凜)이 우리말인 줄 알았는데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한자어임을 알게 되었다. 름(凜)은 찬 것인 바 ‘추위가 매우 심함…위엄이 있는 모양’을 뜻한다”처럼 필요할 경우 덧붙인 한자 원문과 설명 덕분에 책을 읽다 보면 뜻을 대충 알았던 한자어를 제대로 알게 되는 부수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책 말미에는 전국 주요 박물관의 홈페이지 주소가 정리돼 있다. 인터넷 서핑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는 책을 읽으며 사이버 박물관나들이를 할 수 있는 정보가 되겠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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