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프랑수아 고드망/동남아시아 '격변의 계절'

입력 2003-11-19 18:39수정 2009-10-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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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는 이슬람주의와 중국 팽창주의의 덫에 걸린 것일까.

동남아에서 이슬람주의 물결은 이라크전쟁 반대 목소리 속에서 더욱 강화됐다. 이 지역의 모든 정부와 정파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정치세력은 이 물결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물결은 미국과 그 동맹국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동남아의 현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슬람주의에 휩싸인 많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은 중국이 이 지역을 공략하는 것을 오히려 안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유무역과 외교 안보상의 안정을 추구하는 베이징(北京)의 여러 제안은 최근 많은 사건을 겪은 동남아 국가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와 올해 자카르타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는 이 지역의 주수입원인 관광객의 발길을 뜸하게 했다. 필리핀에서는 수도 마닐라까지 영향력을 뻗치는 폭력적인 이슬람 행동주의자들이 다시 준동하고 있다. 태국은 역내 테러리즘에 적절하게 대응해 지난달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무사히 치렀다. 그러나 남부지방에서 기독교 교회와 신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는 무기력하다.

내년 인도네시아는 대선과 총선이라는 양대 정치행사를 치른다. 인도네시아 정당들은 국민 여론이 혐오하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비난하는 동시에 폭력적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배격하는 줄타기를 해야 한다. 말레이시아 역시 같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싱가포르는 매우 안정적인 국가지만 국민의 4분의 1이 이슬람 신자다. 화교(華僑)가 장악하고 있는 이 풍요로운 섬은 서방세계는 물론 바다 건너 중국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거대 중국이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수록 동남아 국가들은 자국 내 중국 교민사회를 희생양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1년여가 동남아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간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ASEAN 국가들은 정치적 격변을 앞에 두고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모두 주요 선거를 치르게 돼 있다. 이런 격변을 거치면서 동남아의 정치철학과 제도가 바뀔 수도 있다. 동남아는 매우 길고 어려운 시간을 겪을지도 모른다.

태국의 탁신 시나왓 총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남아 지도자는 지배력이 불안한 상황이다. 백만장자이며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펴는 탁신 총리는 태국의 건실한 경제성장 덕을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국제정치에는 별로 개입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이 지역에 중국의 외교가 먹혀들고 있다.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새로운 게 아니다. 1980년대 전반기에 벌써 이 지역은 중국의 값싼 소비재시장이 됐다. 1989년 이후 서방이 중국에 정치제재를 가하자 ASEAN 지도자들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아시아 경제위기 때인 1997∼98년 중국은 이웃국가들에 유일한 활로를 제공했다. 이제 중국은 동남아 농업에 큰 이점을 주는 자유무역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경제발전으로 많은 금융원조를 제공해온 일본도 시도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은 불명확하지만 친절한 외교적 수사로 중국의 미래는 남중국해 지역과 함께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동남아 국가들에 신뢰를 주고 있다. ASEAN 국가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친선우호 조약에도 서명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는 미국과는 강한 군사적 유대를, 유럽과도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중국과의 급속한 교역 성장 역시 중요하며 지역의 거인 중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은 그들의 정치적 제안이 동남아 국가들에 여전히 매력적인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냉전을 거치며 강화된 동남아지역과의 유대관계가 약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프랑수아 고드망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 아시아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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