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실][인문사회]'로마인…'…사색의 길로 이끄는 명저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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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10/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잘 먹는 것은 많이 먹는 것보다 중요하다. 먹을수록 해만 되는 음식들도 많기 때문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책이 ‘영혼의 완전식품’은 아니다. 읽을수록 사고를 빈약하게 하고 상상력을 잠재우는 책들도 있다. 무작정 많이 보기보다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독서중독은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 무협지나 판타지류는 중독성이 강하다. 이 책들은 대부분 선과 악의 대결, 주인공의 고난과 극적 승리, 권선징악(勸善懲惡)적 주제라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는 어려운 법, 이런 책들에 익숙한 아이들은 좀처럼 다른 형태의 책들을 읽지 못한다.

독서중독에 빠진 학생들은 성장을 멈춘 아이와 같다. 주말마다 무협 비디오를 한꺼번에 수십 편씩 빌려보는 카우치 포테이토 족이 그네들의 미래 모습이다. 반면 제대로 된 책읽기는 독서량이 늘수록 독자의 흥미를 깊은 사색과 폭넓은 감수성으로 이끈다.

독서가 학생들의 지성과 감성을 살찌우는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심을 양서(良書)로 이끄는 징검다리 책이 필요하다. 오늘 나는 그런 책으로 ‘로마인 이야기’를 권하려 한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게임 같은 재미가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전쟁, 암투, 복잡한 가족사 같이 흥미로운 역사의 소재들을 ‘재료의 맛’ 그대로 살려내는 작가다. 그녀는 골치 아프게 분석하고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옆집 일 이야기하듯 역사의 갈등과 사건들을 술술 풀어낼 뿐이다. 판타지 서술 방식에 푹 젖은 아이들도 책 속으로 이내 빠져들게 되는 구도다.

특히 카이사르를 다룬 4, 5권은 이상과 우상을 좇는 청소년들의 감수성과도 딱 맞는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나미의 태도는 스타를 보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10대 소녀와 닮은 데가 있다. 열렬한 애정에서 쓴 글은 냉철한 이성이 빛나는 글보다 더 부드럽고 강렬하게 읽힌다.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면서도 나나미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생각하게 한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보다 뒤떨어지던” 로마가 왜 승자가 되었는지 하는 그녀의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 스스로 어느덧 로마를 교과서 삼아 우리 시대를 성찰하게 된다.

좋은 약은 입에 쓰기 마련이다. 몸에 이로우면서도 쓰지 않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로마인 이야기’는 좋은 책 읽기를 위한 달콤한 치료제로 권해줄 만한 책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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