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자유주의의 원류'…자유주의 최고 덕목은 '관용'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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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원류’의 저자들은 흔히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공동체적 자유주의로 구분되는 자유주의의 특성이 이미 자유주의의 형성기인 17세기부터 시작됐음을 지적한다. 정치분야에서 자유주의를 선구적으로 실현한 영국 하원의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자유주의의 원류’의 저자들은 흔히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공동체적 자유주의로 구분되는 자유주의의 특성이 이미 자유주의의 형성기인 17세기부터 시작됐음을 지적한다. 정치분야에서 자유주의를 선구적으로 실현한 영국 하원의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자유주의의 원류/이근식 황경식 편저/390쪽 1만5000원 철학과현실사

서평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은 뒤 나는 후회부터 하기 시작했다. 이 책을 엮어낸 ‘이화회(二火會·매달 두 번째 주 화요일에 모인다는 의미)’에 내가 속할 뿐 아니라 이 책에 실린 10편의 글 대부분이 나 같은 경제학자가 평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주의, 그것도 하이에크 자유주의라는 좁은 영역에 약간 관심이 있을 뿐인데 10편의 글들은 모두 18세기 이전 자유주의 사상에 관해 상당히 전문적인 글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 ‘전문가 서평이 아닌 일반 교양인의 독서평 정도라면 한 번 만용을 부려 봐도 괜찮지 않을까’하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이화회’는 ‘공동체적 자유주의’(?) 정도의 입장을 느슨하게 공유하는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의 학제간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는 늘 다른 분야의 발표를 놓고 서로 자유롭게 토론해 왔다. 서평이라고 해서 뭐 그리 다를 것도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다시 후회하기 시작했다. 고대적 자유와 달리 근대적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에 기반을 두며, 이는 사상적으로는 르네상스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의 성립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정도가 자유주의 형성에 관한 나의 소박한 이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17세기와 18세기의 자유주의는 내 생각보다 훨씬 심오하고 복잡했고, 그래서 어려웠다.

그래도 내게는 몇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우선 신성(神性)에 근거한 자연법사상이 스토아학파의 영향을 받은 그로티우스의 근대적 인간주의에 근거한 자연법사상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다시 자유주의와 연결된다는 오병선 교수(서강대·법학)의 주장이나, 밀턴의 언론자유 사상이 고대적 공화주의의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는 임상원 교수(고려대·언론학)의 해석 등은 새로웠다. 그러니까 나의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서양사상사의 여러 물줄기가 서로 합쳐져서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큰 강을 형성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원천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자유주의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현대의 자유주의는 흔히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공동체적 자유주의로 구분되는데, 그 차이의 싹은 이미 자유주의의 형성기인 17세기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우선 홉스와 로크는 당연히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기원이지만, 이 책의 필자들에 따르면 밀턴 등 17세기 영국의 사상적 조류는 고대적 공화주의라는 일종의 공동체주의의 강력한 영향하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또 그로티우스도 다소 무리하게 해석하자면 봉건적 공동체주의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헤겔에서 출발하는 공동체적 자유주의와 달리 공화주의와 연결되는 숙의(熟議·deliberative) 자유주의의 한 탄탄한 기반을 17세기의 밀턴에서 읽어냈고, 또 자유주의 최고의 덕목인 관용에 대한 강조를 로크에게서 찾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숙의 자유주의나 공화주의적인 시민적 덕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듯한데, 이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이 책에 담긴 10가지의 자유주의, 또는 장인 10명의 개성과 솜씨가 빗어낸 10송이의 자유가 만발한 화단을 관상하는 즐거움이었다.

김균 고려대교수·경제학 kyun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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