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부동산대책 '여론의 압력'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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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부 홈페이지는 10·29주택가격안정대책 발표 이후 마비될 정도다. 정부 대책에 불만을 토로하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의 10배 이상 올라오는 의견글은 재경부를 ‘강남 투기꾼의 앞잡이’로 몰아붙이는 내용이 많다. 심지어 “재경부 건설교통부의 장차관, 국장들이 강남 지역에 살아서 기득권을 보호하려고 약한 대책들만 내고 있다”는 인신공격성 글도 수두룩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난은 네티즌뿐만이 아니다. 김태동(金泰東)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까지 가세했다. 김 위원은 “대통령의 부동산에 대한 인식은 정확해 보이지만 경제부총리나 건교부 장관, 재경부 차관의 문제 인식은 똑똑한 대통령에 비해 다소 모자라는 관료로 이루어진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이번 10·29대책을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면 그리 만만한 대책이 아니다. 정부가 마련한 안을 토대로 해도 당장 내년에 강남 지역 아파트의 보유세가 크게 올라 조세저항이 우려될 정도다.

일부 재건축 아파트는 종합부동산세가 적용되는 2005년이면 올해보다 수십 배 오르는 곳도 나타난다. 웬만한 나라에서는 조세저항 때문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초(超) 고강도 정책이다. 더구나 이렇게 해도 안 되면 주택거래허가제를 포함한 2단계 대책을 내놓겠다는 카드까지 준비해 두고 있다.

오죽했으면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면 사회주의적 방법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이제 부동산 대책은 갈 데까지 간 셈이다.

10·29대책 발표 후 만난 한 증권회사 사장은 “강남 집값은 이미 경제문제에서 사회 정치적 문제로 넘어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강남 집값은 ‘배고픈’ 차원이 아니라 ‘배 아픈’ 차원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강남지역에 초점을 맞춘 부동산 대책이 표를 의식한 정치권과 일부 여론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김광림(金光琳) 재경부 차관은 지난달 30일 오전에는 강남 집값이 더 올라야 2단계 대책을 실시하겠다고 했다가 오후에는 현행대로 유지돼도 2단계 대책을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경제정책이 여론 눈치보기식으로 만들어지고 집행되면 반드시 후유증이 뒤따랐다. 그때마다 정부의 신뢰는 결정적인 손상을 입었다. 정책당국은 심사숙고해 방향을 정하고 여론을 수렴하되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부의 잘못으로 보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김광현 경제부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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