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단풍 나들이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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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단풍이 아름답게 드는 곳이다. 단풍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면서 밤낮의 일교차가 큰 기후조건에서 가장 화려한 색상을 띤다. 한국의 가을 날씨가 바로 그렇다. 단풍이 곱게 들 무렵이면 중국대륙으로부터 한반도 쪽으로 강한 북서풍이 불어와 하늘은 더욱 높고 맑아진다. 눈이 부실만큼 황홀한 가을은 신이 우리에게 준 축복이라 할만 하다. 산의 놀라운 변신과 유혹에 이끌려 평소 산을 찾지 않던 사람들도 단풍 구경에 나선다. 가을 산은 풍요롭다. 찾아온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기쁨과 위안, 휴식 같은 값진 선물을 선사한다.

▷단풍과 가을 산에 대한 선인들의 예찬은 곳곳에 남아 있다. '속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올라서니 생각이 해 맑아지네/산 모습 가을이라 더욱 곱고/강물 빛 밤인데도 외려 밝아라.' 고려 때 학자 김부식(金富軾)이 남긴 글이다. 조선조 문인 신흠(申欽)의 글도 있다. '숲에 들어가 나무뿌리 위에 앉으니/나부끼는 단풍잎은 옷소매를 점 찍누나/들새는 나뭇가지 사이로 사람을 구경하니/황량하던 땅이 맑고 드넓어지네.' 숲의 정신적 육체적 치유효과를 찾아낸 숲 연구가 윌리엄 에반스는 '숲 속에서 당신의 생은 새롭게 펼쳐지고 당신은 생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추려내는 능력을 얻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단풍은 나무가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잎에 있던 영양분을 줄기와 뿌리에 모두 옮겨놓고 잎과 '이별'을 하는 것이다. 가을이 되어 날씨가 쌀쌀해지면 잎의 푸른색을 내는 엽록소가 파괴되어 더 이상 광합성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잎을 떨어트린 나무는 다시 봄을 맞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잎눈을 준비한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단풍을 두고 나무의 체념과 슬픔의 표현이라고 말했다던가.

▷단풍의 계절이다. 단풍이 잘 들려면 날씨가 맑아야 하는데 올해는 9월 중 맑은 날이 많았던 덕에 단풍이 아주 아름다울 거라고 한다. 단풍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미덕은 바쁜 현대인들을 모처럼 산으로 불러들인다는데 있다.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청량산에 단풍 나들이를 나섰던 관광객들이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다시 한번 우울하게 만든다. 안전불감증은 고쳐질 수 없는 한국병인가. 나들이 때 단풍의 화려한 자태에만 눈길을 둘 일이 아니다. 단풍이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이라는 자연의 진리에서도 뭔가를 배워야 한다. 후진국형 교통사고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 말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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