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병영, 군기가 우선이다

  • 입력 2003년 9월 18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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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이 시행 중인 ‘사고예방 종합대책’이 군기(軍紀)를 해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니 걱정이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계급사회인 군 조직의 특성상 엄정한 군기는 생명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사고를 예방하겠다고 마련한 대책이 군기를 문란케 한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육군이 한 달 전 사고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은 것은 병영 내 성추행 등 갖가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던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였다고 본다. 이 대책을 시행한 후 구타와 가혹행위 및 언어폭력이 많이 사라진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이를 일선 부대에 적용하는 것이 지나쳐 병사들 사이에서 기본적인 위계질서마저 무너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오죽하면 “장군보다 무서운 이등병님”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이래서야 유사시에 어떻게 병사들을 통솔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같은 군의 기강해이 현상은 사고예방 종합대책이 나올 때부터 예고됐다는 점에서 군 당국의 안이한 대응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군의 특성을 간과한 비현실적 전시행정’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육군은 “병사의 계급은 상하관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라 복무기간과 직무숙련도를 표시한 기준이므로 명령 지시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위 계급 병사의 정당한 지시마저 무시된다면 그건 군대라고 하기 어렵다.

신세대의 특징을 반영해 병영문화를 개선하는 일은 필요하다. 우리 군이 권위주의 시절의 나쁜 잔재를 벗어던지고 민주적인 군대로 탈바꿈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군기를 해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될 수 있다.

군 당국은 군기를 떨어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병영문화를 바꾸는 방안을 놓고 좀 더 고민해야 한다. 군 수뇌부가 탁상행정에만 머물지 말고 직접 부대 현장을 살펴본 뒤에 후속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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