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순망치한(脣亡齒寒)

  • 입력 2003년 9월 13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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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말엽 진나라가 괵나라와 우나라를 침공하고자 했다. 진나라는 먼저 우나라에 제안했다. “괵나라를 치러가는 길을 빌려주면 많은 재물을 주겠다.” 그러자 우나라 중신 궁지기(宮之奇)가 왕 앞에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 있습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리도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먼 우나라 왕은 진나라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결국 우나라는 괵나라가 망한 후 진나라의 침략을 받았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내력이다.

▷순망치한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종종 인용되곤 했다. 괵나라와 우나라의 예처럼 북한과 중국도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가 온전치 못하게 된다는 뜻에서 이런 말을 썼을 것이다. 북한체제가 붕괴해 미국의 영향력이 북-중 국경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은 냉전시절의 중국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중국이 6·25전쟁 때 100만 대군으로 북한을 도운 것도, 90년대 이후 해마다 북한에 에너지와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북한이 중국에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입술’과 ‘이’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사회주의 형제 국가’ 사이에 틈이 벌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중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얼마 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미중 관계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 이래로 가장 좋다”고 밝혔을 정도다. 중국은 경제성장 지속과 2008년 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도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북-중 관계에 변화를 가져온 요인으로는 한중 관계의 비약적인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중국에 북한이 윗입술이라면 한국은 아랫입술이 됐다. 중국은 이제 ‘윗입술이 없어도 이가 시리지 않게(脣亡齒不寒)’ 된 것일까.

▷냉전시절 국가간 관계를 좌지우지했던 이데올로기는 빛을 잃은 지 오래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개별 국가는 오로지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위시한 중국의 4세대 지도자들이 실용주의적이라는 평을 듣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중국에 점점 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을 뿐이다. 90년대 이후 ‘고난의 행군’을 거친 북한이 아직도 이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이 진정 의지할 상대는 남한이다. 북한이 제멋대로 내세우는 민족공조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민족공조가 필요한 때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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