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현실·비현실의 동거

  • 입력 2003년 9월 5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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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최인석 지음/436쪽 9500원 창작과비평사

연작 ‘아름다운 나의 귀신’(1999)에서의 철거촌과 ‘심해에서’(1997)의 매음굴, ‘노래에 관하여’(1997)의 삼청교육대…. 그런 곳이 바로 소설가 최인석(50)에게 주어진 공간이다.

작가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인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역시 유신시대부터 시작해 1980년대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 암울한 시대의 보육원을 지나 미군 대상 클럽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비천한 인물들이 던져진 이곳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산해경’ ‘삼국유사’의 진훤설화 등을 통해 소설 속에 작가 특유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를 오래도록 취재해 온 액자 밖의 ‘나’는 한 보육원에서 심우영이라는 노인을 만난다. 소설은 이때부터 노인이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따라 흐른다.

‘나’(심우영)의 아버지는 남의 집을 털러 갔다가 축대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망 후 술주정뱅이가 되고 만다. 어머니는 결국 아이를 보육원에 맡긴다.

보육원은 또 다른 작은 세상이다. 원장은 원생들을 위한 구호물품들을 제 주머니에 챙기기 바쁘고 주먹을 쥔 자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곳. ‘나’는 애인인 영순이를 두고 보육원을 뛰쳐나온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고교 중퇴생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장을 전전하다가 미군 나이트 클럽에 취직해 화장실에서 미군의 옷을 털어주고 돈을 번다. 더 추악한 세상 가운데서 ‘나’는 밀매와 대마초, 집단혼음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트클럽 보스격인 권 상무의 정부이자 스트립걸로 영순이 나타나고….

자기 모멸과 범죄, 상실감으로 점철된 곳에서 만난 ‘밥어미’의 존재는 스스로 발광(發光)한다. 그는 자신을 열고야라는 나라에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파견된 간첩이라고 주장한다. ‘밥어미’는 지구 반대편까지 우물을 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자신을 위해 죽은 ‘밥어미’를 통해 ‘다른 곳’을 갈망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출구 없는 좌절과 절망은 유토피아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의 다른 모습이다. 거대한 은행나무에 두 눈이 있다거나 때로는 지네로 변하기도 하는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인 장면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관심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치밀한 장치다. 그렇게 최인석의 소설에는 희망과 절망, 현실과 비현실이 손을 맞잡고 있다.

그는 ‘작가의 말’에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총구와 표적지 사이의 거리’이며 ‘그 사이에 이 쾌락과 사랑과 이해와 꿈과 그리움과 아름다움과…그런 것들이, 아슬아슬하게, 존재한다’고 썼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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