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나의 서재]소설가 이윤기

  • 입력 2003년 9월 5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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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씨의 서재는 나무와 벽돌 같은 자연소재로만 꾸며졌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물건들이 싫기 때문’이다. 기증받고 선물받는 책이 많지만 경기 과천의 서재에는 작가 자신이 직접 산 책만을 두는 것도 독특한 분류법이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이윤기씨의 서재는 나무와 벽돌 같은 자연소재로만 꾸며졌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물건들이 싫기 때문’이다. 기증받고 선물받는 책이 많지만 경기 과천의 서재에는 작가 자신이 직접 산 책만을 두는 것도 독특한 분류법이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며 그의 서재도 훔쳐보고 싶어 한다. 개성 있는 서재들을 찾아 서재 주인으로부터 책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소설가이자 신화연구가인 이윤기씨의 경기 과천시 과천동 2층 자택에는 스물세 평짜리 서재가 있다. 지난해 옛 집의 골조만 남기고 집을 다시 짓다시피 하는 보수공사를 해 새로 꾸민 서재는 흰 벽에 마룻바닥을 깔아 수수하고 자연스럽다. 그가 주말에 머무는 경기 남양주시 집에도 서재가 있지만 주로 집필하는 공간은 과천 집의 서재.

●첫사랑처럼 눈에 어리는 책들

3면 벽을 채운 나무빛깔의 책장들은 그가 ‘반쪽이’를 그린 만화가 최정현씨와 함께 직접 디자인했다. 얼핏 보아 세트로 만들어진 책장 같지만 사실은 MDF 박스 100여개를 차곡차곡 쌓은 것이다. 하나하나 분리가 가능해 필요에 따라 위치나 모양을 바꾸기도 쉽다.

책 배열에는 규칙이 있다. 의자 뒤로 손이 가까이 닿는 곳에는 ‘Encyclopedia Britannica’ ‘Great Books’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의 사전류, 90도로 꺾인 지점에는 중국 관련 책부터 시작해 몽골 관련 자료, 한국학 책들이 차례로 한 면을 채웠다. 책상 맞은편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옥스퍼드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 로마 Who's Who?’ 같은 그리스 로마 신화관련 책과 자료들을 두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나한테 대학교나 다름없는 사전입니다. 74년 월급 4만원 받던 시절에 매달 월부금 2만원씩 내고 처음 전질을 사서 밤마다 여기 읽다가 또 저기 찾아 읽다가…. 최근 새 에디션으로 바꾸었죠. 머지않아 서재를 2층까지 확장해야 할 것 같아요. 자꾸 책은 쌓이고, 버릴 수는 없고…. 지금도 옛날에 어디 꽂아둘 데가 없어 버린 책들이 꼭 ‘죽은 첫사랑’처럼 눈에 어른어른합니다.”

●서재에서 길을 묻다

그는 이번 주 신간 ‘이윤기, 그리스에 길을 묻다’(해냄)를 냈다. 이 책에서 그는 영화 ‘슈퍼맨’이 메두사를 물리친 영웅 페르세우스의 전술(戰術)을 원용한 것을 밝히고 몽골 울란바토르의 식당 상호에서도 그리스어의 흔적을 찾아낸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맞닥뜨린 그리스 로마문화의 도도한 현존을 독자들에게 해독해주어 ‘문화 깊이 읽기’가 가능하도록 도와주려 한 것이다.

여행은 그에게 방대한 저술의 원천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서재 복도 한쪽 끝에는 가죽으로 된 밤색 여행가방이 놓여 있다. 윤이 나게 닦여 언제라도 길을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준비된 이가방은 그의 서재에서 ‘출구’ 같은 것이다. 서재 마룻바닥에 책과 그림, 사진자료들을 발 디딜 틈 없이 늘어놓고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다음 목적지에 대한 도상(圖上)훈련을 하다가 어느 날 그는 또 훌쩍 길을 떠날 것이다.

요즘 그가 서재 책상 위에 두고 자주 뒤적이는 책은 ‘한몽(韓蒙)사전’. 7월에는 몽골, 8월에는 중국을 다녀왔다.

“몽골에 깊이 빠져드는 이유는 유목의 정서, 그 기동성의 근본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오늘날은 유목의 시대입니다. 어느 누구도 한 곳에 정주(定住)해 살 수 없어요. 마음과 혀가 다 바깥으로 열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에게 서재는 ‘정신적 유목의 베이스캠프’다.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안동 대구 서울을 거쳐 미국 프랑스 로마 그리스 이집트 몽골과 중국까지 삶의 반경을 확장하는 동안 그는 언제나 책에 먼저 길을 물었다.

“‘칼이 짧은 자는 한 발 더 들어가서 찌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저 자신을 칼이 짧은 자, 이류로 규정했어요. 이류가 일류가 되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죠.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서 매일 자기강화(强化)를 위해 공부합니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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