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파레콘'…참여경제 '파레콘'을 아시나요

  • 입력 2003년 9월 5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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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노사교섭 모습. ‘파레콘’, 즉 참여경제는 계급지배가 아닌 참여적 자율관리, 시장이나 중앙집권적 계획이 아닌 참여적 계획을 기반으로 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현대자동차의 노사교섭 모습. ‘파레콘’, 즉 참여경제는 계급지배가 아닌 참여적 자율관리, 시장이나 중앙집권적 계획이 아닌 참여적 계획을 기반으로 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파레콘/마이클 앨버트 지음 김익희 옮김/503쪽 2만원 북로드

‘짓밟고, 뭉개고, 팔꿈치로 밀어제치고, 서로의 발등을 밟는 것이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운명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운명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앞세운 파레콘(Parecon)이란 유령이 떠돌고 있다.

참여경제(Participatory Economics)를 뜻하는 이 유령의 정체는 ‘공평성, 연대, 다양성, 자율관리, 생태적 균형 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경제정의를 구현하는 제도적 비전’이다.

파레콘 개념은 10여년에 걸쳐 많은 사람의 논의를 통해 개발돼 왔지만 핵심개발자는 정치경제학자 로빈 해넬과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앨버트다. 앨버트는 온라인 진보 네트워크 지넷(Znet·www.zmag.org)의 편집자로 미국 진보진영의 대표적 논객이다. 하워드 진, 놈 촘스키, 아룬다티 로이, 반다나 시바, 에드워드 사이드 등이 필자로 참여하는 지넷은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광범위한 이슈를 다룬다. 긴급 이슈에 대해선 실시간에 가깝게 정연한 논리를 펼치는 지적 기동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파레콘의 적들은 무엇인가. 자본주의적 세계화, 부익부 빈익빈, 문화적 가치의 획일화, 약자에 대한 억압, 공공재에 대한 경시, 중앙계획과 통제가 지배하는 사회, 경제행위자들 사이의 적대감 등이다. 여기서 파레콘의 핵심 요소들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사적 소유가 아닌 사회적 소유, 위계적 직장 조직이 아닌 일련의 노동자 소비자 평의회와 균형적 직제, 재산과 권력 또는 산출에 대한 보상이 아닌 노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 시장이나 중앙집권적 계획이 아닌 참여적 계획, 계급지배가 아닌 참여적 자율관리 등이다. 아나키즘, 자율주의, 조합주의, 유토피아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지닌 셈이다. 이쯤 되면 파레콘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파레콘에서는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으며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했는가, 즉 노고의 정도에 따라서만 보상의 크기가 결정된다. 그러나 산출에 대한 보상이 아닌 노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이 동기유발에 적절한 인센티브일까?

파레콘은 답한다. 파레콘에서와 같이 사람들이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면 외부 동기가 없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의무 책임 희생 보상이 공정하게 배분된다면 사람들의 사회적 의무감이 기존사회보다 더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인간관이다. 참여와 자율에 바탕을 둔 파레콘은 인간관계의 본질적 호혜성과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전제로 할 때 유효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야말로 더 나은 세계의 건설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닐까? 저자는 그런 질문에 대해 인간이 사악한 존재이기를 사실상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냉소주의라고 쏘아붙인다.

금년 봄 출간돼 20여개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희망의 청사진일까, 아니면 가망 없는 유토피아에 불과할까. 파레콘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는 실제로 실현에 성공하는 것뿐이다.

이 책은 파레콘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와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요컨대 책 자체가 하나의 실천이라는 게 저자의 대답이다. 이 책을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bookma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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