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

  • 입력 2003년 8월 22일 17시 36분


코멘트
계몽과 해방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는 독일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 저자인 김덕영 교수는 ‘싸움’이 사라진 무기력한 지식인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논쟁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사회학사를 기념비적으로 장식한 논쟁들을 정리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계몽과 해방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는 독일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 저자인 김덕영 교수는 ‘싸움’이 사라진 무기력한 지식인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논쟁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사회학사를 기념비적으로 장식한 논쟁들을 정리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김덕영 지음/424쪽 2만6000원 한울

사회학의 생성과 발전은 주류 인식틀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폭로를 통해 전개돼 왔다. 이는 주류의 시각을 통해서는 포착되지 않는 이면의 진리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필연적 작업이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회학의 생래적 속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역작이다. 단순히 사회학적 대논쟁의 사례들을 모아 놓은 평범한 ‘사회학사’가 아니라, ‘논쟁’이라는 단어에 의도적인 방점을 두고 있는 책이다.

저자(한국디지털대 교수)는 그 이유를 “싸움이 죽고, 비판이 죽고, 논쟁이 죽고, 또한 지식인과 대학이 죽은 거대한 회색의 공동묘지와도 같은 지적 판도에서… 논쟁이 얼마나 정신세계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얼마나 이를 발전시키는 원동력과 추진력이 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그 논쟁은 겉으로만 다툼의 형식을 띠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과 방법론 간의 치열한 투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9개의 대논쟁은 모두 독일적 배경을 갖고 있다. 제1부는 이른바 ‘방법론 논쟁(Methodenstreit)’으로 알려진 것들을 다룬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벌어진 이들 논쟁은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en)’이라는 범주 개념이 등장한 이후 빚어진 실증주의·반실증주의 논쟁, 그리고 경제학과 역사학 영역에서 연구방법론을 둘러싼 논쟁들을 말한다. 저자는 이 ‘방법론 논쟁’은 당대를 수놓았던 또 다른 두 가지 주류 사회학적 흐름, 즉 프랑스의 뒤르켕학파나 미국의 시카고학파와는 다른 방식으로 향후 20세기 사회학이 씨름하게 될 핵심 쟁점들을 앞서 짚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지대했다고 평가한다.

제2부는 사회학의 핵심 논쟁들을 잘 보여준다. 사회학 논쟁사의 백미로 통하는 베버의 가치판단 논쟁, 형식사회학과 이해사회학 논쟁, 만하임의 이데올로기 논쟁,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은 포퍼, 알버트, 아도르노와 마르쿠제, 하버마스, 루만 등과 같은 거장들에 의해 제기된 계몽과 해방, 보편성 및 상대성의 문제, 주관(성) 및 객관(성)의 문제, 이해와 해석의 문제, 그리고 주체와 체계의 문제 등을 둘러싼 대논쟁들이 검토된다. 이 논쟁들은 현대 사회학의 가정, 개념, 방법론이 보다 세련되게 확장되고 정립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쿤이 말한 대로 사회학 연구에서는 공동체의 지배적 언어와 틀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에 부득불 길을 내줘야 한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은 치열한 논쟁의 장이 존재함을 전제로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학계에는 학문적 온정주의와 파벌주의 또는 근친상간적 공생의 룰로 인해 치열한 논쟁의 전통이 자리 잡지 못했다. 부디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을 통해 논쟁의 불씨가 지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칸트주의자로서 정체를 드러냈다. 저자는 주체와 대상간의 거리두기, 차이, 분화 등과 같은 칸트의 인식론적 가정과 개념에 의지해 논쟁의 필연성과 정당성의 근거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이해는 칸트가 ‘실체(noumena)를 인식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한 인간을 마치 현상(phenomena)뿐 아니라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인 듯이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적 문제이긴 하지만, 저자의 글쓰기에서 군데군데 난삽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특히 서문 중에-이 눈에 띈다. 아마도 오랜 독일식 글쓰기 습관 때문일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비전문가의 입장을 배려해 좀 더 매끄럽게 가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송재룡 서울사이버대 교수·사회학 jrsong@iscu.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