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샤먼의 코트'…시베리아 원주민들 ‘魂의 노래’

  • 입력 2003년 8월 8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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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한 종족의 샤먼(무당)이 굿을 하기 위해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뒤 큰북을 들고 서있다.사진제공 미다스북스
시베리아 한 종족의 샤먼(무당)이 굿을 하기 위해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뒤 큰북을 들고 서있다.사진제공 미다스북스
◇샤먼의 코트/안나 레이드 지음 윤철희 옮김/342쪽 1만3500원 미다스북스

#1 시베리아 사하족과 네네츠족 샤먼(무당)의 혼령체험

시베리아 쇠로 된 부리와 긴 꼬리를 가진 새가 사하족의 샤먼을 물어 지하로 데려갔다. 새는 샤먼을 소나무 가지 위에 내려놓고 잘게 토막 낸 뒤 그 조각들을 천연두와 독감의 혼령에게 먹이로 줬다. 질병의 혼령이 배불리 먹고 나자 새는 샤먼의 뼈를 맞춰 다시 살점을 입히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산 속 동굴에 있는 벌거벗은 남자는 네네츠족의 샤먼을 데려간 뒤 부젓가락으로 집어 펄펄 끓는 가마솥에 3년 동안 담가뒀다. 샤먼을 다시 꺼낸 남자는 혼령을 볼 수 있는 눈과 영원히 노래할 수 있는 목청, 나무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고막을 선물했다.

#2 시베리아 사하족과 한티족의 언어

사하족의 욕은 ‘돌 같은 눈’ 혹은 ‘얼음 같은 눈’이다. 한티족 단어 중 80%는 동사다. ‘앉다’라는 말도 앉는 곳이 땅이냐, 통나무 혹은 그루터기냐에 따라 다르다. 의성어도 다양해 ‘곰이 크랜베리 수풀을 걸을 때 나는 소리’ ‘오리가 물 위에 조용히 내려 앉는 소리’에 해당하는 말이 따로 있다. 외부에서 유입된 사물의 경우 ‘모자’는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위쪽이 넓은 나무’, ‘사진’은 ‘물이 고요히 고여 있는 웅덩이’로 표현한다.

시베리아. ‘우랄산맥과 태평양 사이의 러시아 영토’로 정의되는 시베리아는 미국을 통째로 들어서 내려놓아도 경계선에 닿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땅이다. 시베리아 오지에 가면 아직도 ‘레닌’과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원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16세기 후반 러시아가 진출하기 전까지 시베리아에는 몽골 투르크 피노우그리아 계열의 언어를 쓰는 30여개의 민족이 살고 있었다. 원주민의 정신적 결속은 샤먼을 통해 이뤄졌으며 공동소유와 집단혼을 통해 종족의 결속을 다졌다. 흔히 미지의 땅이라는 수식어는 유럽인들에게 통용되는 것일 뿐 이곳은 이미 많은 부족의 삶의 터전이었다.

저자는 시베리아의 출발지인 우랄산맥에서부터 동쪽 끝 사할린섬까지 기행하면서 타타르족, 한티족, 부랴트족, 투바족, 사하족, 아이누족, 니브히족, 우일타족, 추크치족 등 9개 종족의 삶을 추적했다. 저자는 러시아의 정복 전쟁과 원주민의 대응 및 굴복, 그리고 1917년 공산혁명과 1990년 구소련의 붕괴까지 시베리아의 변천을 기행과 인터뷰, 전래민담, 역사적 사실의 서술 등을 통해 생생히 그려낸다.

러시아 진출 이후 이들의 역사는 많은 굴곡을 겪었다. 이들은 북미 인디언이나 호주의 애보리진처럼 러시아인에게 철저히 유린당했다.

러시아인이 가져온 질병 매독 천연두 인플루엔자는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에벤키족 사하족은 80% 이상 희생됐고 한티족 만시족 네네츠족 케트족 유카기르족 이텔멘족 코랴크족 등은 절반 이상이 재앙을 당했다. 보드카는 수많은 사람을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었다.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에서 피의 숙청을 겪었으며 집단화 방침에 따라 종전의 터전을 버리고 집단촌으로 이주해야 했다. 구소련의 붕괴로 시베리아의 러시아 인들이 떠나버리자 지역경제가 붕괴하며 이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졌다.

이들에게 희망이 남아있을까. 저자는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북미 인디언처럼 몰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산정권의 수많은 파괴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샤먼’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이들의 민족의식도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석유 다이아몬드 등 막대한 자원은 부활을 위한 경제적 자산이 될 것이다.

16세기 후반부터 현재의 시베리아를 알고 싶은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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