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83…아메 아메 후레 후레(59)

  • 입력 2003년 8월 3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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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문득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고무줄이 생각났다. 고무줄을 잡아당기자 발치로 땅콩이 떨어졌다. 깜박했네, 그 선생님한테 받아놓고서 안 먹었지. 이로 깨물어 껍질을 벗겨내 ,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갓난아이 울음소리 같은 소리로 우는 갈매기를 향해 던졌다. 갈매기가 소녀의 단발머리에 닿을락말락하게 날아 내렸다. 다시 한 개를 던지자 공중에서 잡았다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자 부리 사이로 떨어뜨리고는 등대 아래 파도머리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었다. 소녀는 등대가 있는 제방 끝까지 깽깽이발로 뛰어가, 제방에 앉아 다리를 덜렁덜렁 흔들며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휙 휙 갈매기들을 불렀다.

사냥모 쓴 남자는 바람 때문에 성냥에 불이 붙지 않자 짜증이 났는지 맨담배를 입에 문 채 고개를 쳐들고 눈이라도 몹시 나쁜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리 좀 와봐라! 할 말이 있다.”

남자는 갑자기 손을 흔들며 큰 소리를 질렀다.

소녀는 훌쩍 일어나 차도를 가로지르듯 손발을 열심히 움직이며 뛰었다.

“맨발로 뛰면 위험하지. 녹슨 못이나 유리 조각이 있으면 어쩌려고…너, 몇 살이냐?”

“열세 살요.”

“열세 살이라….” 담배를 너무 피운 탓에 목소리는 갈라지고, 내뱉는 한숨소리마저 쉬어 있었다.

“나, 바다 처음 보는 거예요. 보통열차 타고 한 시간 반이면 부산에 갈 수 있는데, 밀양 여자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밀양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일이 많아요. 우리 할머니도 그랬고, 엄마도 아마…지금 여기가 어디 쯤이에요?” 소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태양과 바람이 파도 머리 하나 하나에 빛을 피우고 있었다.

“황해의 북쪽, 요동만하고 서조선만에 낀 요동반도의 끝이다.”

“…바다는, 등을 돌릴 수가 없네요. 자꾸만 보게 되요…할 얘기가 있다고 했는데….”

“…내 일은 다롄항까지 데리고 오는 것으로 끝이다.”

“네?”

남자는 바다와 태양과 바람에 등을 돌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담배 내 나는 침을 쩝쩝거렸다.

꽃망울이 터지듯 감사의 마음이 가슴에 퍼지고, 소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물을 참았다. 태양을 등지고 있는 탓에 남자의 얼굴이 확실하지 않았지만 왠지 괴로워하는 듯 보였다. 바람이 숨을 죽이듯 잔잔해지고, 배가 눈처럼 하얗고 눈부신 항적을 그리며 다가왔다. 뱃머리에는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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