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학교 담장

  • 입력 2003년 6월 11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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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정발산공원 주변에는 담장이 없는 집들이 많다. 담장이 있더라도 어른 허리 아래 높이 정도로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보다는 장식용에 가깝다. 행인들은 집 주인이 정성스레 가꾼 잔디밭과 화단을 감상할 수 있다. 마당이 활짝 들여다 보이는 이 아름다운 동네를 배경으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곧잘 드라마를 찍는다. ‘담장 없는 집’이 공공 부문으로 확대되려는지 공원이 부족한 도시에서 공공기관과 학교가 담을 허물어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는 담을 허무는 학교에 예산 지원까지 해준다.

▷방과 후 교실에서 여교사가 치는 풍금소리가 들리고 공을 차는 아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운동장 너머로 누렇게 익은 벼들이 출렁거리는 시골학교 풍경은 나이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향수처럼 남아 있다. 시멘트 블록 담 대신에 측백나무 울타리가 교사와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학교 주변이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문화로 오염되어 있지 않아 학교가 사회와 엄격하게 차단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 도시 학교들은 달라졌다.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을 두어 학교 주변에 여관이나 유흥시설이 못 들어서게 해야 할 정도로 학교는 사회로부터 격리돼 보호를 받아야 할 곳이 됐다.

▷미국의 초중고교는 빈틈없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수상한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한다. 길거리에서 별 뜻 없이 하던 일도 학교 담장 안에 들어가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담장 안에서는 담배조차 피울 수 없어 골초들은 교문 앞에서 한대 피우고 들어가야 한다. 초등학교 주변 횡단보도는 모두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운전자들이 특별히 서행으로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 인근 주택가의 집들은 담장이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학교는 정문 한 곳을 빼놓고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돼 있다.

▷담장이 없는 학교 구내에 들어와 술을 마시거나 운전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 학교당국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학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교내에 아무렇게나 들어와 술 담배를 하고 어린이들 옆에서 유해한 행동을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 학교 담장은 학생들의 배움터를 각종 사회악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처마 밑이 안보이게 높은 담장을 쌓고 그 위에 살벌하게 쇠창살까지 박아놓은 주택가를 그대로 놓아두고 학교 담장부터 없애는 것은 아무래도 순서가 바뀐 느낌이다. 가뜩이나 인명을 해치는 유괴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시절이어서 담장 없는 학교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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