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힐러리 정치학

  • 입력 2003년 6월 5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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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 남편의 불륜 고백을 듣고 아내가 터뜨린 이 말이 화제로 떠올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자 민주당 상원의원인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에서 한 얘기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에 ‘우익의 음모’라고 맞섰던 당찬 아내, 르윈스키 스캔들이 신문을 새까맣게 발랐을 때도 다보스포럼에 참가해 메모 없이 말 한번 안 더듬고 연설해 사람들을 감탄시켰던 지적인 퍼스트레이디였다. 대통령보다 권력욕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던 힐러리가 남편의 외도를 알고는 울며불며 악을 썼다는 토로에 “역시 여자…”라는 반응도 나온다.

▷힐러리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일까. 남편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는 사람이 힐러리다. 출판사측도 과연 저자가 솔직하게 써줄까 반신반의했을 만큼 감춰왔던 내밀한 얘기를 털어놓았을 적엔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지적한다. 첫째가 정치적 전략이다. 민주당 지도자가 되고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위해선 화제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더구나 2008년 대통령선거에 나가 이기려면 2004년의 민주당 후보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져야 자신에게 유리하다. 힐러리가 지금 책을 낸 것도 유권자들의 시선을 대선주자들로부터 돌려놓아 결국 민주당 후보를 떨어지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800만달러를 받고 정치가 아내로서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속사정까지 드러낸 것은 ‘미국이라는 기업’의 오늘을 말해준다는 분석도 있다. 돈만 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탐욕스러운 제도가 자본주의다. 내가 나를 파는 자유를 누구도 못 말리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치인의 경험은 물론 정치인과의 스캔들도 돈으로, 할리우드의 스타덤으로 바꿀 수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1200만달러를 받고 2005년에 회고록을 내기로 했다니 공직을 이용해 치부하는 것과 오십보백보다.

▷그러나 이 같은 가시 돋친 분석을 내놓은 이들이 주로 남자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마뜩지 않은 것이다. 낸시 레이건처럼 남편의 러브레터를 모아 내는 것도 아니고, 재클린 케네디처럼 속타는 사연을 가슴에 묻지 않는 정치가의 아내가 ‘위협’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남편을 용서한다고 해놓고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느닷없이 칼을 들이대는 마누라가 무섭기도 할 것이다. 남편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덤’이 하나 더 생긴다는 캠페인으로 당선에 일조했던 똑똑한 여자 힐러리도 남편 그늘에서 벗어나 제 발로 서려면 구설수를 겪어야 하는 세상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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