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 땅의 아름다운 사람들'…위인들의 생생숨결

  • 입력 2003년 5월 23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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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아름다운 사람들/이호철지음/343쪽 9500원 현재

‘소설가 이호철이 만난 사람 19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진정 ‘사람답게’ 살았던 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주로 1960년대 이후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 깊이 몸담고 있던 이들의 면면이 시대상과 함께 진솔하고 담백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평생에 천관우라는 사람만큼 강하게 마음 속 깊이 박혀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고 말한다. 매사에 철저하게 경우를 차리는 것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되 호탕하나 짧은 문장 하나라도 구석구석 단어 하나까지 섬세하게 챙기는 사람이라는 것.

70년대 초 그가 동아일보 주필을 지낼 때, 여당의 한 인사가 크리스마스카드와 적지 않은 돈을 함께 보내자 천관우는 즉시 등기우편으로 반송하며 내용증명까지 첨부했다.

황순원을 떠올리며 저자는 “선생의 문학이나 인품이 ‘가생이’로 밀려난 듯한 느낌이 든다”고 아쉬워한다. 황순원이 50∼60년대에 걸쳐 살았던 회현동집은 젊은 작가들에게 일종의 믿음과도 같았다. 통행금지 예비 사이렌이 울리면 누군가가 “회현동 가자”고 했고, 황순원은 늘 반갑게 맞아주었다.

저자는 황순원과 1952년 처음 만났다. 갓 월남한 이호철은 당시 미군부대 경비원으로 일하는 21세의 청년이었다. 무작정 원고꾸러미를 들고 황순원이 재직하고 있는 서울고등학교로 찾아갔다. 깡마르고 서슬이 서 보일 정도로 첨예하게 생긴 황순원의 추천으로 저자는 ‘문학예술’에 작품을 실을 수 있었다.

저자는 “50, 60년대 지성의 풍토에서 선생은 혼자서 핫바지 저고리에 난데없이 괭이를 들고 나타난 이단자처럼 여겨졌다”고 함석헌을 회상한다. 하는 소리도 귀에 설고, 갖은 분칠과 지적 겉치레가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함석헌의 글만은 시골 장돌뱅이의 글 같았다는 것. 그러나 ‘신 위를 긁는다는 말이 있다. … 요새 글 쓰는 사람들 보면 어찌 그리 신은 것이 많은가? 양말 신고, 구두 신고, 덧구두 신고, 그 위를 긁는 것 같은 글뿐이다’ 라는 선생의 글이 지금에 와서야 새삼 신선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이 밖에 월탄 박종화, 가부장제 문단의 가부장 김동리, 가톨릭 주교 이전의 자연인 지학순을 비롯해 조태일 김학철 남정현 이문구 등의 생생한 숨소리를 만나볼 수 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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