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권철현 중후산업 회장

  • 입력 2003년 5월 19일 19시 16분


코멘트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비운의 철강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국내 철강계의 원로로서 40여년에 걸친 그의 철강 인생은 결국 창업 기업의 경영권 회복이라는 소원을 풀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18일 타계한 권철현(權哲鉉) 중후산업 회장. 62년 연합철강을 설립, 당시 민간 철강기업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100만t)까지 키워냈다. 연합철강은 74년 국내 기업을 통틀어 처음으로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잠시, 유신정권의 눈 밖에 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시작된다. 77년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경영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창업자인 그의 지분은 3분의 1로 떨어졌고 경영권은 51%의 지분을 확보한 국제그룹에 넘어갔다. 유신정권을 비판하면서 ‘괘씸죄’에 걸렸다는 게 주변의 평가. 권 회장은 이 때문에 옥고까지 치러야 했다.

85년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권 회장은 경영권 회복에 한 가닥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연합철강은 동국제강으로 넘어갔다.

이후 20여년의 세월은 그야말로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사투(死鬪)였다. 연합철강을 인수한 동국제강은 시설 투자를 위해 증자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권 회장의 반대에 부닥쳐야 했다. 증자가 되면 지분이 분산돼 어렵게 지켜 온 2대 주주의 자리조차 뺏긴다는 게 권 회장의 논리였다. 이 때문에 연합철강의 주주총회장에서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난투극에 가까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권 회장은 비록 연합철강 경영권 회복의 숙원을 풀지 못했지만 그의 장남인 권호성(權浩成) 중후산업 사장이 AK캐피탈컨소시엄을 구성, 한보철강 인수에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연 철강인으로서 못 다한 그의 꿈은 2세에 의해 이뤄질 것인가.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