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미녀와 야수

  • 입력 2003년 5월 19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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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선거는 미녀와 야수의 대결로 시선을 모았다. 미스 유니버스 출신의 훤칠한 미녀 시장 이레네 사에스와 육사 출신으로 공수부대 중령 시절 쿠데타를 일으켰던 우고 차베스가 경합을 벌였기 때문이다. 사에스는 에바 페론의 미모와 마거릿 대처의 열정을 겸비했다는 여성이었다. 막판 지지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의 미녀대통령이 나온다는 소리도 들었다. 여기서 이긴 차베스 대통령은 아무래도 미녀와 악연이 있는 것 같다.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경제 개혁 공약을 들고 나와 승리했으나 그 과감한 개혁조치 때문에 이번엔 미스 유니버스가 될지도 모를 이 나라 또 다른 미인의 앞길이 막힌 것이다.

▷아름다운 갈색 머리를 지닌 올해의 미스 베네수엘라는 다음달 열리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못 나간다. 엄격한 외환통제 때문에 참가비 8만달러를 구하지 못해서다. 차베스 대통령은 올 초 자신의 사임을 요구하는 총파업에 맞서 자국화폐 가치하락과 경제난 가중을 막는다며 긴급 외환거래 통제조치를 내렸는데 그 불똥이 여기까지 튄 거다. 미인대회쯤 못 가는 게 무슨 대수이랴 싶지만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지금까지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만 4번, 미스 월드에서 5번 왕관을 차지한 미녀왕국의 자부심이 무너졌다. “돈이 없어 우리나라 여성이 미인대회에 못 나가는 건 축구왕국인 브라질이 같은 이유로 월드컵에 참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미스 베네수엘라 협회장이 한탄했을 정도다.

▷브라질과 월드컵 예에서 보듯, 요즘처럼 두 나라가 비교되는 때도 없다. 올 초 취임한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 강조하던 포퓰리즘을 버리고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합리적 개혁으로 국가 경제를 살리고 있다. 이에 비해 차베스 대통령은 지나친 포퓰리즘과 급진좌파적 개혁으로 지지기반인 빈민층과 측근을 제외한 많은 이들의 원성을 사는 형편이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독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비판적인 언론이라는 데는 차베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이 반정부 감정을 부추긴다며 올해를 ‘언론과의 전쟁의 해’로 선언했던 그는 외환통제를 빌미로 신문용지 수입을 못하게 하는 탄압책을 쓰기도 했다. 마침내 미스 베네수엘라의 슬픈 소식이 외신을 탄 다음 날인 17일엔 TV와 라디오의 정부비난 보도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는 토론프로그램 출연자가 정부를 비판하면 방송사 소유주가 책임을 져야 할 판이다. 방송사 사장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면 끝날 일에 왜 그런 법까지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상한 나라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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