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진덕규/통합의 정치

  • 입력 2003년 5월 11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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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정치는 갈등과 대립의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만 지속된다면 정치사회는 분열되고 말 것이다. 동서고금의 정치가들이 예외 없이 ‘통합의 정치’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를 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다 함께 승자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통합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정치가도, 멋있는 정치적 관행도, 그리고 부러운 정치사회도 통합의 정치가 가져다 준 산물이다.

▷통합의 정치에 이름을 올릴 만한 정치가를 고른다면 가까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를, 멀리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떠올릴 수 있다. 만델라는 오랜 투옥생활에서 벗어나 76세였던 1994년에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억압과 불법을 자행했던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죽음의 응징을 내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용서와 화해’를 내걸었다. 전형적인 통합의 정치를 추구했던 셈이다. “억압했던 자들을 용서해 주는 것만이 억압당했던 사람들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한편 엘리자베스 1세는 가톨릭과 국교회의 권력 싸움판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톨이로 자랐다. 그 시절에도 권력은 음모와 투쟁의 집합체여서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등 뒤로는 예사로 비수를 꽂았고, 충성의 서약이 끝나기도 전에 배신이 자행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란 합치는 것이고 어울리는 것임을 믿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치세 당시는 물론 지난 1000년 동안 최고의 정치 지도자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아왔다. ‘황금의 연설’로 알려진 유명한 의사당 고별 연설에서도 그녀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지난날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지금 내가 앉은 이 자리에는 나보다 몇 배 더 뛰어난 군주들이 앉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보다 더 여러분을 사랑한 사람은 영원히 갖지 못할 것이다.”

▷이쯤 되어야 통합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잡초’를 제거하는 것도 좋고 새싹을 기르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당장 필요한 것은 통합의 정치를 이룩하는 것이다. ‘권력 장악-유효한 무기의 독점-정당성 확보-가치배분-새 사회제도 정립’이라는 정치적 전개과정은 필연적인 일이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모두가 하나 되는 마음을 일구어야 한다. 사람들 마음 속에 우리나라, 우리 정부, 우리 대통령이라는 강한 믿음이 자리잡게 될 때 비로소 개혁도 발전도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러한 믿음은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진덕규 객원 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 dkjin@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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