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빚부담 빨간불]단기채무가 절반…부실 악순환

  • 입력 2003년 5월 4일 18시 41분


코멘트
지난 2년간 무모할 정도로 확장 경영을 해온 은행과 카드사 등 금융권이 경기침체의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다.

가계대출과 카드대출 연체율 급증으로 경영실적이 악화하면서 카드사들은 빚 갚을 능력을 잃고 스스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들도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외환위기 당시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더 늦기 전에 부실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를 받고 있다. 은행 경영실적은 경기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데 최근 경제상황이 나쁜 것은 각종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3월 중 경상수지 적자는 11억9000만달러로 4개월 연속 적자를 보였다. 1·4분기 도소매판매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0.2% 감소하는 등 생산부문에서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은행 빚, 왜 이 지경이 됐나=은행이 금융채 발행을 늘린 것은 안정적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일반 단기예금은 예금보험료와 지급준비금 부담 등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 금융채보다 조달원가가 비싼 편이다. 더욱이 예금으로 받은 자금은 주로 주택담보대출로 빌려주어 제대로 회수할지가 걱정스럽기도 한 상황이다.

문제는 금융채 만기구조다. 3월 말 현재 앞으로 1년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금융채는 51조9000억원으로 전체 발행잔액의 48.3%에 이른다.

한은은 금융채 만기를 중·장기로 분산해 위험을 줄여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은행경영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데 갚아야 할 빚마저 한꺼번에 몰릴 경우 은행 금고가 마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채권 종류별 발행잔액은 일반금융채 85조4000억원, 후순위채 21조1000억원, 하이브리드 및 기타 채권이 9000억원이다.

은행 그룹별로는 시중은행이 55조9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특수은행 49조7000억원, 지방은행 1조8000억원 등이다.

▽경기 회복 시기가 관건=금융계는 경기부진이 지속되고 카드연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한편 SK글로벌까지 법정관리에 들어가 충당금을 50% 이상 쌓아야 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은행들은 올해 적자를 낼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들이 출자한 카드사의 부실이 모회사인 은행의 부담으로 이어지면 금융시장 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회사인 카드사의 부실채권을 은행이 떠안든지, 아니면 카드사의 자본금을 늘리기 위해 은행이 무리하게 자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추가적인 부담은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떨어뜨려 산업현장에 돈을 돌게 하는 ‘금융시장의 심장’으로서의 역할을 축소시킬 전망이다.

카드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카드채 만기연장과 증자계획은 일시적 대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된다”며 “카드사의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경기의 조기 회복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9개 전업카드사와 16개 은행겸영 카드의 전체 연체금액(이하 1개월 이상)은 11조3000억원에 달해 지난해 말의 8조3000억원보다 3조원(36.1%) 늘어났다.

따라서 지금은 은행과 카드사 모두 투자자산을 줄여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판단에 얽매이지 않고 몇몇 부실 카드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