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교사가 학생을 버릴 때는

  • 입력 2003년 5월 2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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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7일은 우리 교육계에 ‘충격과 공포의 날’이었다. 천안초등학교의 축구부 합숙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9명의 어린 꿈나무들이 희생됐다는 소식이 이날 조간신문에 크게 보도됐다. 서울에서는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학교급식을 먹은 뒤 식중독을 일으켜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누구보다 학생 보호에 앞장서야 할 교사들이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하루였다.

▼학교를 내버려 둘 것인가▼

그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분회장 2500여명은 이날 여의도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전교조의 ‘전략과제’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반대하는 집회였다. 평일이었기에 이들은 학교에 집단연가를 낸 뒤 수업을 마다하고 시위장소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만큼은 NEIS 반대를 뒤로 미루고 교육자의 역할에 충실했어야 했다. 학생들을 한번이라도 생각했어야 옳았다. 요즘 전교조의 운동방식은 이런 식이다.

교단 갈등이 웬 말인가.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소리가 나온 게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사교육시장은 공룡처럼 커져만 가고 학부모들은 그 돈을 대느라 파출부 일까지 하고 있다. 교사들은 정말 국민 앞에 송구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국민이 낸 돈으로 월급을 받는 당사자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도리요, 양심이다.

하지만 반성은커녕 교육당국과 교장 쪽이 문제라면서 학생, 학부모를 앞에 놓고 싸움을 하고 있으니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문제를 떠나 이러고서야 이 나라 교육이 잘될 리 없다.

교장들 역시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장들 말대로 그동안 전교조가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할 만큼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나섰다면 적극적으로 알리고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교장들은 전교조의 위세에 눌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대충 넘어가려 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전교조의 기세를 더욱 등등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교사들의 명분 있고 타당한 제의에 대해서도 구세대의 권위로 외면해 교무실을 대화가 사라진 ‘침묵의 공간’으로 만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가장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들은 다름 아닌 교육당국이다. 교육부는 ‘반미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대통령이 실태조사를 지시하기 이전에 왜 일찍 막지 못했는가. 반미수업은 전부터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는가. 학교가 이토록 조각조각 나도록 내버려 둔 것은 또 누구인가. 교육청은 전교조의 점거 농성이 무서워 교육감이 전교조에 반성문까지 써주며 대충 타협해 왔고 교육부는 지역 교육청 소관이라며 ‘남의 일’처럼 외면하지 않았는가. 대통령이 전교조를 의식하니까 교육부도 전교조 눈치를 살피지는 않았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유족에게는 불행한 일이긴 해도 만약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 자살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모순투성이의 교육현장은 또 한번 묻혀 지나갔을지 모른다.

더 이상 이들에게만 교육을 맡길 수는 없다. 학부모가 나서야 한다. 보성초등학교의 사례가 비록 극단적인 것이기는 해도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학부모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학교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학부모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학부모들은 그동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다. 아이를 맡기고 있다는 ‘원죄(原罪)’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자기들끼리 갈등을 빚고 교육 주체들이 학생들의 학습권보다 집단이기주의를 앞세울 때는 학부모들이 최소한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는 가려 주어야 한다.

▼학부모들이 나서야 할때▼

학부모들이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학교운영위원회 같은 기존 제도 내에서 최대한 발언권을 행사해 그 결과가 학교 운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교사들이 학부모를 두려워할 때 그나마 헝클어진 교육 문제의 실타래가 풀릴 것이다. 전교조는 이달 중 9만여명의 전 조합원이 NEIS 문제와 관련해 연가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쉽게 말해 전교조 교사 전원이 하루 동안 학교수업을 거부하겠다는 ‘힘의 과시’다. 교사들이 학생을 버릴 때 과연 어떻게 해야 옳은가.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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