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골프장 변론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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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golf)를 잔디(grass) 산소(oxygen) 햇볕(light) 친구(friend)의 운동이라고 부른다. 잔디밭 위를 걸어가며 산소와 햇볕을 즐기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 계층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에도 골프 인구가 300만명을 넘어섰다. 영업 중인 골프장수가 165개에 이르지만 주말 부킹난을 해소하기에는 태부족이다. 국토면적이 좁은지라 18홀 골프장의 회원권 가격과 그린피가 미국 유럽 동남아와 비교할 때 턱없이 비싸다. 더욱이 한국 골프는 도입 초기부터 귀족운동으로 발전해 서민층의 거부감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골프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째, 남편이 사업 핑계 대고 주말만 되면 혼자 골프장으로 달아나 생기는 ‘주말 골프 과부’들이다. 둘째, 골프장이 숲을 까뭉개고 과도하게 농약을 살포한다고 비난하는 환경단체들이다. 산지가 전 국토의 70%인 나라에서 골프장이 잡목 숲 대신에 정돈된 환경을 창조한다는 반론도 있기는 하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몇몇 골프장들은 회원제 골프장이 안 됐더라면 벌써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세 번째는 골프가 검은 거래를 조장한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대표적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당시 5년 동안 공무원들은 골프장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골프 약속을 취소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졌다. 이용섭 국세청장은 내 돈 내고 골프 치기가 어려우니 골프를 끊겠다고 선언하고 직원들에게 부킹 부탁을 들어주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김동건 서울지방법원장은 소속 법관들에게 변호사와 골프를 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일주일 내내 소송기록과 법정 공방에 시달린 법관이 주말에 호쾌한 샷을 날리며 잔디 산소 햇볕 친구를 즐기는 것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골프장을 법정 밖 변론의 기회로 이용하면서 법관의 윤리 문제가 생겼다. 얼마 전에는 판사가 담당 사건의 변호사와 골프를 치고 향응을 제공받은 뒤 문제가 돼 사표를 낸 일이 있다.

▷국세청장이나 법관 같은 고급 공무원도 자기 돈 내고 골프 치기가 부담스러울 만큼 골프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높은 세금과 호화 시설 투자비 때문이다. 클럽하우스와 그늘집의 음식값과 그린피에 부과되는 세금을 낮추고 미국에서처럼 플레이어가 카트를 끌고 햄버거와 음료수를 백에 넣고 다니며 먹는다면 요금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들에게 골프장 금족령이 내려지지 않아도 되련만….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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