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수수께끼, 유희를 넘어선 교양'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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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유희를 넘어선 교양/로거 뢰싱 지음 박희라 옮김 창해/132쪽 8000원 창해

‘사람들은 나를 누르고, 때리고, 동여매고, 묶는다/그 보답으로 나는 당신을 가르친다.’

19세기 독일 시인 코르툼의 시. 인내심이 대단한 ‘나’는 누구일까. 정답은 이 기사의 끝 단락에 있다.

모든 시대를 통해 수수께끼는 민담과 설화의 훌륭한 소재이며 사람들의 좋은 소일거리였다. 최근 우리의 눈길을 끄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도 설화에 자주 나타나는 두 가지 중요한 ‘수수께끼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수수께끼를 풀어 부와 명예, 멋진 배우자를 쟁취한다는 모티브, 상대방에게 신원을 감춰야 한다는 ‘금문(禁問)’의 모티브다. 이름 자체가 수수께끼가 된다는 뜻에서 후자도 넓은 의미의 ‘수수께끼 모티브’이며 이 두 가지 동기(動機)는 구조주의자들이 전 세계의 설화와 문학작품에서 구리조각처럼 흔하게 찾아내는 자원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대문명권과 성서, 동화, 그림 등을 오가며 인류가 정신적 자원으로 공유하는 수수께끼의 다양한 모습을 탐색한다. 그러나 지적 재치를 시험하던 수수께끼가 근대 이후 교양의 양을 재는 의미의 ‘퀴즈’로 변화해 가는 양상이라든가 수수께끼가 ‘꿈’과 같이 인간의 원형 욕구를 담고 있다는 프로이트적 분석 등의 깊이 있는 시각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책에 담긴 수수께끼 몇 가지. 문:눈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있는데 왜 사람은 검은 눈으로 세상을 볼까? 답:인생은 어두운 곳을 통해 밝은 것을 보는 과정이므로 탈무드에 담긴 이 심오한 문답에서 보듯 여러 문명권에서 사람들은 수수께끼를 통해 인생과 세상을 가르쳤다.

문:과부인 자기 아내의 여동생과 결혼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을까? 답:죽은 자는 결혼할 수 없다. 문:하느님에게는 없지만 거지에게는 얼마든지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동료.

기사 첫머리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곧바로 시선을 건너 뛴 독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독자가 읽고 있는 이 지면(B섹션)은 통틀어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그 답은 코르툼이 낸 수수께끼의 답과 같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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