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경근/'20만달러 폭로극' 철저수사를

  • 입력 2003년 3월 31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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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공동체가 ‘사적 집단과 사적 권력의 제도화’란 의미에서 근대성을 지니지 못하고 표류했던 것이 지난 DJ정권의 한 양상이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20만달러 수수 의혹 제기를 둘러싼 법적 정치적 처리에 관련된 검찰과 국회, 그리고 이를 폭로한 국회의원의 행태도 그 중의 한 예다.

▼‘說’의 공작정치 끊는 계기되길 ▼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고 헌법기관으로서 면책특권이 있다.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관해 국회 밖에서 특히 법적 책임을 지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이 굳이 그와 같은 면책을 받지 못하는 장소에서 제1야당 총재의 금품수수 의혹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면 시정의 민심은 그 폭로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물증인 테이프도 있다 하니 더욱 그러했다.

폭로의 시점은 지난해 4월이었다. 12월 대선을 8개월 앞둔, 그리고 당시 대통령의 두 아들 비리 의혹으로 여론이 분분하던 때였다. 시기적 절묘함이 있었다. ‘정권 차원의 공작정치다, 아니다’의 논란이 연일 신문 지면을 차지했다. 이 폭로극의 예상 주연과 조연들이 각기 행사하는 권력이 심각하게 사유화되었다는 지적도 상당하게 나오곤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근 1년이 지난 지난달 27일에서야 이를 폭로한 설모 의원은 그 첫 공판인 서울지법의 법정 진술을 통해 이는 김모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얘기를 전해들은 김모 당시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의 제보와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의 말을 어떻게 안 믿었겠느냐는 설명이다. 물증 테이프의 존재는 여전히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재판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예단은 피해야겠지만 이 폭로극에서 비롯된 명예훼손 등의 소송사건 처리와 관련해 검찰은 왜 진작 이를 신속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사건 발생 10개월여가 지난 올 2월, 새 정부가 들어설 즈음에야 기소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당시는 대선을 앞둔 시기였고 이 사건 소송의 당사자 모두에게 그 진위가 가져올 파장 등을 생각한다면 이제서야 그 첫 공판이 열렸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지연된 사법이었다. ‘지연된 사법은 부정의(不正義)’라는 법언(法諺)이 그대로 들어맞는 경우다.

이 소송과 별도로 검찰은 김 전 비서관의 조사 내용은 물론 수수 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빠른 시일 내에 밝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의 고위 인사 역시 스스로 관련 없음을 국민에게 밝혀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설 의원의 경우 헌법기관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한 것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설 의원이 지금 미국에 있는 김 전 비서관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는 등의 책임전가적 자세에 머무는 것은 헌법기관이자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좀 더 숙고해야 할 점이 있다.

국회는 이 문제를 수준 높은 정치와 권력의 제도화를 위해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현재 국회법상 상설로 두고 있는 ‘윤리특별위원회’를 소집해 법적 문제와는 별개로 이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국정조사니 특검이니 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허언(虛言)과 공작으로 물든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정치인들 스스로 뼈 아프게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정치인들 뼈아픈 반성 필요 ▼

인터넷실명제의 법제화 보도가 나오는 지금 오프라인의 세계 역시 공작정치를 배제할 수 있는 ‘정치실명제’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원은 법원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이번 폭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야 할 것이다. 이 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국가 권력의 제도화를 이뤄 비록 현대성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근대성은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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