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연하게 자유언론의 길을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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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도 말이 넘치는 시대에 언론은 오히려 위기를 맞고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정제되지 않은 의견과 주장의 범람으로 ‘언란(言亂)’을 우려할 상황이다. 관점과 시각이 다르면 매체간에도 적대감을 드러낼 정도여서 다원주의가 숨쉴 공간은 비좁을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가 창간 83주년을 맞은 오늘, 유례없이 혼돈을 겪고 있는 언론의 현주소가 그렇다.

사회적 의제 설정과 공론화 기능의 약화 및 혼란은 언론이 자초한 측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근대언론의 여명기부터 언론문화를 선도해 왔던 정론지로서 동아일보의 책임 역시 막중함을 통감한다. 안팎의 언론환경이 급변하는 지금은 언론의 길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문화주의의 길을 제시한 동아일보의 창간은 식민지의 암흑 속에 피어오른 봉화였다. 이후 모진 풍상에도 간단없이 민족의 미래를 열어간 동아일보의 역사는 곧 개혁과 진보의 역사였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너무 빨리 나아가면 진로를 바로잡고 속도를 조절하려 했다는 점에서 안정과 보수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 균형추는 언제나 국가와 민족의 안녕과 번영이었다.

탈(脫)이데올로기 시대의 보-혁(保-革)은 대립개념이 아니라 보완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이념적 편차가 적과 동지를 갈라 서로 내치고 미워하는 동기가 돼선 안 된다. 그것은 민족에너지의 결집과 국가의 진운을 저해한다. 다만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바로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다. 우리가 극좌도 극우도 배격하는 이유다.

창간사에서 천명한 대로 ‘민중의 열망과 시대의 동력’으로 탄생한 동아일보는 항상 열려 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도 이처럼 83년간 한결같았던 마음가짐임을 밝혀둔다. 또다시 정권의 실패로 국민이 고통받지 않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정세가 불안한 시기에 출범한 새 정부의 연착륙을 위해 우리가 기울인 노력을 역사는 평가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이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를 거론한 것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지럽고 어두운 시절 누구보다도 시샘과 박해를 많이 받아온 동아일보는 아무도 시샘하거나 박해하지 않는다. 혹시 권력의 탈선과 실정에 대한 감시나 의혹과 비리에 대한 비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유감이다.

이에 권력은 “언론은 오류가 없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물론 왜 없겠는가. 그러나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한 원자료를 제공하는 언론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국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권력은 다르다. 또한 질문은 권력이 아니라 언론의 몫이다. 그리고 언론은 날마다 독자들의 심판을 받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인쇄된 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모든 자유 가운데 가장 신성한 권리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언론의 자유는 보-혁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독자들의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겸허히 수용해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고자 한다.

첫째, 오직 시선(視線)을 국민에게 둘 것이다. 권력의 시선이 국민을 향할 때엔 권력을 도울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엔 권력을 질타할 것이다. 둘째, 권력에 대한 견제는 언론의 권리이자 의무임을 잊지 않고 ‘단소리’는 삼키고 ‘쓴소리’를 할 것이다. 셋째, 권력의 전횡이나 타락에 대한 정당한 분노는 억제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신념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스스로 정정당당할 수 있도록 몸가짐을 각별히 살필 것이다. 우리 안의 편견을 없애 눈부터 맑게 할 것이다. 위기 때마다 새롭게 거듭나온 동아일보는 독자들이 굴절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투명한 창이 될 것임을 재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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