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양심수의 定義는 무엇인가

  • 입력 2003년 3월 24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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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는 ‘양심수가 단 한명도 없다’고 했으나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양심수 사면복권을 추진해 어느 쪽에 오류가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독재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긴급조치 등 각종 악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던 시절에 민주화를 요구하다 수감된 사람들을 언론과 인권단체 등에서 양심수라고 불렀다. 새 정부가 검토하는 사면복권 대상자들이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사면복권 검토 대상자는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동 관련법 위반자와 한총련 등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주류를 이룬다. 단병호씨는 화염병과 돌이 난무해 수십명씩 부상당하는 도심 시위와 불법 연대 파업을 20여 차례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사람이다. 그를 양심수의 범주에 넣을 때 산업현장에서 노동 관련법을 준수하라는 말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한총련의 변화를 전제로 이적단체 고리를 풀어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에 동조한 한총련 가담자를 양심수라고 호칭하다 보면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생기게 된다.

법무부가 공안사범 가석방 심사규칙을 개정해 준법서약서 제도 폐지를 검토하는 데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준법서약서가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으나 당시 소수의견이 있었고 최근에는 보수적인 헌법학자들도 ‘사상전향서’의 직계자손격인 준법서약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행형 성적이나 면담 등을 통해 준법의지를 확인하는 방법을 권유한다.

노동관련법 위반자와 한총련 관련자 등 공안사범에 대해 양심에 입각해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는 이미지를 주는 양심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여러 모로 적절하지 않다. 지나간 시절의 과오에 대해 법적 관용을 베풀더라도 국민정서와 법 논리에 합당한 용어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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