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김규환/머릿속엔 '세계 1등제품' 뿐

  • 입력 2003년 3월 19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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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봄만 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1988년 봄, 올림픽이라는 큰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국내외의 수많은 바이어와 손님들이 한국을 찾았다. 우리 회사도 여기에 맞춰 신제품 개발을 위해 전 종업원이 밤낮없이 일했다.

당시 컴퓨터로 정밀가공품을 생산하는 기계인 NC와 MCT 제작부서에서 일하던 나는 의문이 생겼다. 힘들고 덩치 큰 제품들은 우리가 만들고 작지만 값나가는 정밀제품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수입해 조립 생산하는 것이었다. 개발하는 것보다 사다 쓰는 게 돈이 적게 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정밀가공품을 생산하는 기능공으로서 나는 수입품을 국산화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일본인도, 미국인도, 독일인도 잘 하고 있는데, 왜 우리만 외국 것을 사다 써야 한단 말인가, 모든 것을 사다 쓴다면 기술개발은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꽃상여에서 정밀기계 영감 얻어 ▼

나는 동료들과 품질관리 분임조 활동으로 우리가 수입하는 품목 중 가장 비싸고 가장 정밀하다는 ‘하이스피드 어댑터’란 공작기계 부품 생산에 도전했다. 작게는 50Φ(파이·얇은 가공품의 직경을 의미하는 단위로 ㎜와 같은 크기)에서 크게는 1000Φ 정도의 크기에 깡통처럼 얇게 생겨 정밀하게 가공한다는 게 처음부터 어려웠다.

밤을 새우고 또 새우기를 몇 달. 하지만 그 일은 밤새우며 실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결정적인 가공방법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나는 처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실험을 중단한 채 상가(喪家)에 가게 됐다.

마당에서는 꽃상여가 막 출발하고 있었다. 상여 위에 한 아저씨가 흰 두루마기에 건을 쓰고 올라타서 종을 흔들면서 “간다∼ 간다∼ 나는 간다”며 상엿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여를 멘 사람들이 “어∼어름차∼ 어허!”라고 답했다. 상여는 사람들이 어깨에 걸칠 수 있도록 긴 막대를 앞에서 뒤까지 양쪽으로 끼우고 광목을 묶어 놓았다. 그때였다. 상여의 네 번째 줄을 멘 아저씨의 어깨 끈에 밀려 상여 아래 막대가 앞으로 뒤로 ‘빙그르르’ 돌아갔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내 머리에는 무언가 번쩍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렇다! 바로 어깨띠다.’

나는 얇고 큰 부품을 어깨띠처럼 감싸고 가공하는 방법을 개발해 동일 기종의 모든 부품을 국산화했고, 수입품보다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연구 개발하는 사람의 눈에는 모든 사물이 연구의 소재가 된다. 밥을 먹어도, 길을 걸어도, 꿈을 꾸어도 항상 실현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회사 일로 독일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독일 최고의 기술자로 인정받은 ‘기능장’이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도 옆이 터진 운동화를 기운 것이었다. 그가 왜 이런 운동화를 신고 있는지는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니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점심시간이 지나도 기계 앞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들여다보니 정밀가공 마지막 작업 중이었다. 결국 나와 독일 기능장은 점심을 지나치고 말았고, 그는 자신이 싸온 빵과 우유로 점심을 대신했다. 점심을 싸오는 이유를 물었더니 “일이 점심시간이 지나서 끝날 것 같아 그랬다”며 “정밀가공은 기계를 세우면 미세한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겉치레나 명예보다 자기 일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세계 1등 제품을 만들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못한다는 생각 해본적 없어 ▼

초등학교 과정만 공부한 나는 1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명장이 되었다. 최선을 다하면 학벌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한번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

■경력

△1956년생 △창원기능대학 졸업(1992년) △전국 최우수 명장(名匠) 선정(1992년) △삼성그룹 중앙연수원 및 아주대 창원대 강사 △저서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김영사·2001년)

김규환 대우종합기계(주)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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