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부시는 전쟁중' "…악을 종식시켜라"

  • 입력 2003년 3월 7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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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에는 미국 대통령 역의 조지 W 부시, 부통령 역에 딕 체니, 국무장관 역에 콜린 파월, 국방장관 역에 도널드 럼즈펠드,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역에 콘돌리자 라이스, 중앙정보국(CIA) 국장 역에 조지 테닛….

9·11테러 발생 직전인 2001년 9월11일 아침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공격 1주년이 되는 2002년 10월까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국가안보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대테러전쟁 과정을 다룬 이 책은 긴장감 넘치는 한편의 드라마다. 저자가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도청 의혹을 폭로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인공으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밥 우드워드(워싱턴포스트 편집부국장)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사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생생한 기록이다.

그는 “50회 이상 열린 백악관 상황실의 국가안보위원회 속기록, 주요 인물들의 개인적 비망록, 메모, 달력, 내부일정 등이 이야기 전개의 토대가 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 밖에 전시내각의 핵심 국무위원, 백악관 참모, 국방부 국무부 CIA의 관료 등 정책결정과 전쟁집행에 관여한 100여명과의 인터뷰가 구체적 상황 전개에 관한 상세한 서술의 자료가 됐다. 우드워드는 일반인들에게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정책결정의 핵심 인물들과 녹음하며 인터뷰를 했고 필요에 따라서는 한 사람과 6회 이상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과도 두 차례 녹음 인터뷰를 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9·11테러 직후인 14일 테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을 격려하며 즉석 연설을 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등장인물의 대화와 생각을 서술하고 그들의 성격과 태도 및 당시 분위기를 상세하게 묘사했다.

전통적인 픽션의 형식을 취하는 이 책은, 그러나 철저히 사실에 근거했다. 주요 회의와 사석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나 소리 없이 주고받는 메모의 내용은 대부분 따옴표로 처리됐다. 이 따옴표들은 그 안에 있는 말이나 글이 우드워드의 녹음기와 자료철에서 그대로 인용된 것임을 의미한다. 그는 “따옴표 없이 인용한 것은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용어를 문맥에 맞게 첨삭한 부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세계 최강국이 세계 최대의 테러에 어떻게 맞서며 대응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9·11테러의 배후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처음 보고된 11일 오후 3시반 오퍼트 공군기지에서의 첫 번째 테러위기대책 국가안보위원회, “21세기의 진주만 기습이 오늘 일어났다”고 기록한 그날 밤 부시 대통령의 메모, 12일 오전 “우리는 전쟁 중”이라며 “선과 악의 기념비적 투쟁”을 독려하는 그의 사태 인식, 13일 오후 “테러리즘을 비호하는 국가들을 종식시키겠다”는 공식 발표, 16일 오후 ‘악(惡)’과 ‘악한(惡漢)’이란 단어를 일곱번이나 언급하며 대테러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표현해 보좌관들을 긴장시킨 미국 대통령, 인도주의적 입장을 선전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첫 폭탄’으로 식량을 떨어뜨리기를 요구했던 그의 대공방어망에 대한 무지, 북한 지도자에 대해 말할 때는 자리에서 껑충 뛰어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격앙되며 “나는 김정일을 증오합니다”라고 소리치는 그의 북한 인식….

백악관과 펜타곤의 안방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생생하다. 이런 유의 책에서 흔히 나올 법한 인도주의적 관점의 비판이나 대테러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 발언조차 없다. 그저 ‘생생하게’ 전달되는 백악관 ‘가족’들의 긴박감 넘치는 논픽션드라마를 보면서 특종기자 우드워드의 욕망과 백악관의 홍보전략이 만난 ‘신종 권언유착’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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