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홀대받는' 통상교섭본부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33분


코멘트
“어엿한 장관급인데 장관 인사에서 언급조차 없으니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외국에서 어떻게 볼지 걱정입니다.”

새 정부 출범 후 장차관급에 대한 인사가 대부분 마무리되자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직원들은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 새 정부 첫 통상교섭본부장 인사가 장관급은 물론 차관급 인사에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

청와대측은 3일 차관급 인사를 발표하면서 “통상교섭본부장은 장관급이어서 차관급과 함께 발표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장관급 발표 때 왜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통상교섭본부 일각에서는 심지어 “혹시 임명해야 하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임기가 있는 자리가 아니어서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당연히 바뀔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현재 업무는 붕 떠 있는 상태다.

당장 4일부터는 한국과 싱가포르간 자유무역협정(FTA) 산관학(産官學) 1차 공동연구회가 시작된다. 이달 말까지는 도하개발어젠다(DDA) 서비스 협상 양허안을 내야 하고 쌀을 제외한 농업분야 개방 방식(모댈리티) 초안도 정해지는 등 하루 하루가 촉박하다.

한 중간 간부는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무회의에 참여하지만 국무위원은 아니고 장관급이라고 하지만 차관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면서 “이러한 모호한 지위가 이번 인사에서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정쩡한 지위 때문에 부처간 견해가 안 맞을 때 조정능력이 떨어지고 나아가 대외협상력도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DDA, FTA 외에도 통상 파도가 높아지는 등 현안이 많아 ‘통상의 해’라고까지 불린다. 하지만 통상교섭본부는 마치 정부 안에서 잊혀진 조직처럼 느껴진다고 직원들은 말한다.

‘집안’에서 무시당하면 밖에 나가서 힘을 쓸 수 없다. 통상조직과 통상장관이 정부부처 인사에서도 잊혀진다면 대외 교섭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성장의 70% 이상을 대외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 통상 역량을 키우기는커녕 통상교섭본부와 본부장을 홀대해서야 되겠는가.

구자룡기자 경제부 bon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