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철수/‘특검안 거부’ 명분없다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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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비밀송금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안이 통과된 지 1주일이 지났다. 한달 만에 통과된 이 법안이 여야간의 극한 대결을 가져올 우려가 커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명이 있었으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앞으로 대북 비밀송금을 차단할 필요성 때문에도 특검제 실시가 요망되고 있다.

▼위헌소지때 행사 ‘최후수단'▼

특검제 법안이 제출된 뒤 여야간 총무회담이 있었으나 합의를 하지 못하고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합세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특검법안에 대해 여당이 갖는 불만은 여당이 자초한 것이요, 국회 불참의 책임은 여당이 져야 한다. 국회는 여야 합의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토론과 협상이 안 될 경우에는 다수결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국회 다수가 가결한 법률안을 마치 불법 처리한 것처럼 주장하면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거나 국회의장 불신임결의안을 제출하려는 것은 원내 정당이 할 일이 아니다.

정치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회중심 정치’에 있다. 정당활동도 원내 정당화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때 국회에 여당이 불참한다는 것은 명분없는 일이다. 야당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장외투쟁을 벌이겠다고 한다는데 이것도 잘못이다. 야당도 국회중심의 정치를 위해 원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국무총리나 관계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 건의권을 행사할 것이지 장외투쟁에 나선다는 것은 국회 포기 행위다.

야당이 고건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동의 처리해준 것은 야당의 성숙성을 보인 것인데 여당이 국회에서 적법하게 통과된 법안을 거부하도록 대통령에게 떼를 쓰는 것은 협량이라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여당은 야당을 최대한 존중해 상호 타협하는 것이 국정을 원만히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국회통과 법안이라고 하여 반드시 공포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부권 행사는 최후의 수단이며 법률안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 등의 이유가 있는 경우에 국한되어 있다. 특검법안이 헌법에 위반된다고는 할 수 없고, 집행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불필요한 거부권 행사를 강요하는 것은 국회중심 정치를 표방하는 참여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특검법안은 본회의 수정 과정에서 많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정부 여당에만 불리한 것도 아니다. 대북 비밀 뇌물사건의 멍에를 털어 버려야만 새 정부도 깨끗한 출발을 할 수 있다. 과거의 멍에를 지고, 과거를 은폐하고 미화하다가는 새 정부의 앞날에 암영을 던질 수도 있는 것이다. 상생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야당의 입장과 주장도 헤아려줄 줄 아는 대국적 정치가 필요하다.

이번 특검법안은 여당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본회의에서 대상을 축소하고 기간도 단축한 것이다. 이 안이 국가의 이익을 해칠 중대한 우려가 있더라도 대통령은 여야 상생정치를 위해 우선 공포 시행하고 동시에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직 대통령의 보호 차원에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의 지탄을 받을 뿐이다.

▼시행과 동시에 개정안 낼수도▼

북한 핵문제가 국민의 생사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한미군사동맹이 균열조짐을 보이며 적자수출과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이 시기에 여야간의 극한 대립은 피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북핵 규탄이나 한미공조 방침은 적극 추진해야 하며 외교를 발목 잡는 국내 정치의 혼미는 막아야 한다.

게다가 특검법이 공포 시행되더라도 진상이 규명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를 거쳐 1인의 특별검사 임명을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요청하는 일을 비롯해 특별검사 추천, 특검에 대한 활동보장 등의 문제들 때문이다. 민주당과 정부는 과민반응을 삼가야 할 것이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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