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안사범이 인수위 참여했다니

  • 입력 2003년 2월 27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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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범조차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간단하게 기소중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전산망을 갖춘 나라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인 사람이 버젓이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여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정부 관계기관들은 그때까지 도대체 무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수위가 내부 검증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도 못 찾아내면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국가기밀을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으면 무얼 하는가.

재일교포가 북한의 공작금과 지령을 받고 남한 내 조선노동당 지하당 조직과 연락을 하며 간첩 활동을 했다는 사건에서 이범재씨는 입북 대상으로 선정돼 교육을 받은 혐의라고 한다. 지나간 시대의 공안 사건들 중에는 과대 포장된 사례가 더러 있었고 이 사건도 그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더라도 사법부에 의해 핵심 관련자들이 중형을 선고받은 터에 이씨의 혐의가 가볍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씨는 고문에 의한 짜맞추기 수사의 공포가 사라진 민주화 시대에도 10년 가까이 도피 생활을 했다. 도피 사실을 숨기고 인수위에 참여한 의도가 떳떳하지 않을 뿐더러 의심스러운 구석마저 없지 않다. 그가 맡았던 장애인 복지 업무 외에 국가기밀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국가기밀을 다루는 인수위가 뒤늦게 신원조회를 한 일도 잘못이지만 기소중지 사실을 알고 나서도 이씨가 계속 인수위에서 일하도록 놓아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인수위가 활동을 멈춘 뒤 발표를 한 것을 보더라도 국정원이 인수위 눈치를 살피며 몸을 사린 듯한 인상을 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주요 정부 기관에 사회변혁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다수 포진하게 됐다. 독재정권과 싸웠던 열정은 개혁추진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조선노동당의 남조선 지하당’을 했던 세력과는 구분돼야 한다. 이씨와 같은 사람이 또 없는지 지금이라도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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