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뇌손상과 마음

  • 입력 2003년 2월 2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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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장애이지 우울증은 아니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불을 당긴 용의자가 2년 전 뇌중풍이 생겼고 최근 우울증 탓에 병원에 간 적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급히 해명에 나섰다.

용의자는 뇌가 손상을 입어 정신적 장애가 생긴 것이므로 우울증 등 마음의 병 환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뇌병변장애는 뇌성마비, 뇌손상, 뇌중풍 등으로 뇌에 문제가 생겨 행동, 사고 등에 지장이 생기는 것.

정신과 의사들은 사회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환자가 치료를 피하는 사태를 우려한 듯 하다.

필자는 그 순수한 뜻에는 동의하지만 뇌병변장애와 마음의 병에 확실한 선을 긋는데에는 반대한다. 뇌병변장애로 생긴 마음의 병도 다른 이유로 생긴 마음의 병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은 신체 활동과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설득력을 얻어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르네 데카르트는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이야말로 물질세계와 구분되는 사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봤다.

그는 언어의 사용, 수학적 사고 등을 정신이 존재하는 근거로 댔지만 컴퓨터의 등장으로 이 주장이 설자리를 잃게 됐다.

뇌의학은 마음이 곧 뇌의 활동이라는 증거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최근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장애 등의 치료가 잘 되는 것은 정신질환이 뇌의 특정 요소와 이상이 있음을 밝혀내 ‘타깃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일부 신경과 의사들은 정신과 의사가 ‘신경정신과’라는 용어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도 넌센스다. 지금 정신과에선 마음을 직접 보다듬어 환자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뿌리인 뇌신경계를 고치는 방법도 쓰고 있다. 정확한 의미에서 정신과보다는 신경정신과가 더 맞는 것이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사람은 공격적일 수 있어 위험하고 다른 정신질환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순화하면 뇌중풍,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인해 뇌병변장애가 생긴 사람을 매도하는 결과가 된다. 마음의 병도 넓은 의미에서 신체의 병이다. 정신질환자는 다른 환자와 달리 마음을 직접 다친 환자다. 치료와 사랑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정신질환자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우발적 범죄를 일으키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지만 치료를 제대로 안 받으면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일으킬 수 있다. 이번 대구 참사의 용의자도 마음의 병을 제대로 치료받았다면….

이런 의미에서 정신질환자 치유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방화범의 가족, 사회, 국가 모두 이번 참사 앞에서 떳떳할 수 없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죄인이다.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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