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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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최병권 이정옥 엮음/339쪽 1만2000원 휴머니스트

‘지금은 나의 과거의 총합인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예술 작품의 복제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 자체의 뜻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이 물음은 6월에 치러지는 프랑스 대학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철학시험 문제들이다.

이 철학 문제는 그 자체만으로 사회의 이슈가 된다. 언론에선 올해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속보 형식으로 보도한다. 시험 끝나는 저녁 무렵부터는 방송사 언론사 사회단체들이 정치 문화 언론계 유명인사와 일반 시민을 모아놓고 시험문제에 대한 다양한 토론회를 열고 모의고사까지 치른다. 프랑스에 있어 대학입시일은 ‘철학의 날’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고교 교육 자체가 그렇다. 국어 수업의 경우 교과서 진도라는 게 없고 일반 문학작품을 읽고 서로 비평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조르주 상드는 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 문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기술하라’는 등의 질문에 대해 A4용지 4, 5장 분량의 글을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단련된 프랑스인들은 그 교육정도와 상관없이 ‘볼테르가 말하길, 위고가 말하길, 루소…’ 등 인용하기를 좋아하고 적절한 이론과 예문을 동원해 토론한다. 이 책에는 인간 인문학 예술 과학 정치와권리 윤리 등 6개 분야에서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출제된 시험문제와 함께 답변이 적혀 있다. 답변은 시민들의 모의고사에서 가장 수준이 높거나 출제자의 의도에 부합한 것을 골라 뽑은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평범한 시민들의 답변이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수준이 높다.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자습서만 끼고 사는 우리 청소년들은 논술시험 때문에 단기 과외까지 받아야 할 지경이다. 과연 우리 교육이 알맹이는 다 버리고 쭉정이만 취하는 게 아닌지 반성하게 만든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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