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승호/누가 토론을 멈추게 했나

  • 입력 2003년 2월 19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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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과 최태원(崔泰源) SK㈜ 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재계 전체가 납작 엎드리고 있다. 권력 앞에 엎드린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고 그래도 그동안 갑론을박이 계속되던 출자총액제한, 상속·증여 완전포괄제, 주5일 근무제 등에 대해서도 재계는 거의 투항하는 분위기다.

당사자인 SK그룹은 더하다. ‘이 사건에 대한 SK의 입장을 밝혀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그룹측은 “SK의 주장이 신문에 나오는 것도 싫다. 저항하는 모습으로 비치고 싶지 않다. 제발 조용히 넘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다시피 말했다.

최 회장의 편법 상속 시비에 대해 “그런 시각도 있을 수 있겠지만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검찰 그 사람들, 법률전문가 맞는가”라고 논박하던 며칠 전의 당당함은 간 곳이 없다.

개개인의 세계관에 따라 재계 주장에 동조할 수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옳다고 볼 수도 있다. SK에 공감할 수도, 검찰 편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건강하고 격의 없는 토론이 갑자기 멈춰지는 모습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는 공동체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문제 해결 방식이 매우 비민주적이고, 윽박지르기 식이라는 지적에 대해 권력은 뭐라고 해명할까? 특히 이는 “토론공화국이 되도록 하겠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약속과는 정반대 방향이 아닌가.

이렇게 한국사회가 권력 앞에, 또 ‘권력의 가장 노골적 형태’인 사정(司正)당국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것은 재계를 포함한 사회 곳곳에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편법 탈법의 관행이 내려오다 보니 누구든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털면 먼지가 나오는 형편인 것이다.

‘토론이 완력으로 마무리되는’ 장면을 더 이상 보기 싫은가?

권력의 전횡과 공포에서 자유스러우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각 부문이 스스로 약점을 없애야 한다. 털어도 먼지 안 나오는 사회, 투명한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허승호기자 경제부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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