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허브와 네트워크

  • 입력 2003년 2월 3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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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여자들의 수다를 비웃는 소리다. 하지만 수다가 여성만의 전유물이라고 간주하면 오산이다. 서로 모여서 이야기, 특히 남의 말을 하면서 은밀한 쾌감을 나누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건 인간의 오랜 본능이다. 회의실이나 계단 끝 흡연장소, 술집에 가면 접시 깨지는 것 뺨치게 종이컵이 뭉개지고 술병이 날아가기도 한다. 영국의 조직심리학자 나이겔 니컬슨에 따르면 남자들은 이걸 수다 아닌 ‘네트워킹’이라고 고상하게 부를 뿐이다.

▷“우리끼리 얘기”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가 온 동네를 돌아 다시 내 귀에 들어오는 일이 적지 않다. 한 쪽에서 새로운 정보를 주면 다른 쪽도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내놓아야 한다는 ‘네트워크의 정치학’이라는 게 있어서, 내가 처음에 했던 말이 좀 더 풍만해져 있기 십상이다. 특히 마당발, 정보통으로 이름난 사람에게 뭔가를 털어놓는 것은 24시간 위성방송에다 대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2000년 전 사도 바울은 이를 잘 이용한 사람이었다. 복음을 전파하되 당시의 가장 큰 공동체를 찾아, 제일 효과적으로 이웃에게 알릴 수 있는 사교성 있는 사람들과 접촉한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네트워크와 ‘주변의 점들과 유독 더 많이 맞닿아 있는’ 연결점인 허브(hub)를 가장 먼저 이해했던 모양이다.

▷그 ‘인간 허브’를 잡는 것은 마케팅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유행 여부나 대박 예감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이들에게 집중 홍보를 하면 ‘뜰’ 확률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에이즈나 성병도 성관계가 많은 허브를 통해 급속히 확산된다. 따라서 에이즈나 성병의 치료예방은 이들 허브를 집중 공략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같이 패션부터 에이즈와 테러, 주식시장 붕괴 방지까지 거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네트워크 이론이 지금 미국서 일시적 인기(fad)를 끌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도 전하고 있다.

▷지난달 말 세계를 꼼짝 못하게 했던 인터넷 대란도 네트워크의 도미노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가장 부자 웹사이트인 허브가 무너지면서 그 밑의 수많은 사이트가 연쇄적으로 쓰러져 전체 네트워크가 마비됐다는 설명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네트워크이며 어디에나 네트워크는 존재한다. 부익부 빈익빈, 20/80 등 인간의 법칙이 지배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가장 강한 허브가 실은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지녔다는 것은 절묘한 역설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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