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은행 믿고 재산 맡겼다니

  • 입력 2003년 1월 30일 17시 02분


코멘트
지난해 1년 동안 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가 223건에 2435억원이나 된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99년의 437억원에 비하면 무려 5배로 늘었다니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허술한 은행들을 어떻게 믿고 재산을 맡기라는 것인가.

금융사고의 내용을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과거에는 은행 직원의 실수나 우발적인 단순사고가 많았던 반면 최근에는 직원이 고객예금을 직접 빼내거나 비밀번호를 외부로 유출시키는 등 지능적이고 의도적인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은행 직원에 대한 대우가 상대적으로 나빠졌고 해고 위협에 시달리다 보니 쉽게 유혹에 빠진다고 하지만 빈약한 윤리의식만을 탓할 때가 아니다.

은행 직원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의 책임이 더 크다. 이중 삼중으로 고객정보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들은 금융사고가 훨씬 적지 않은가. 예컨대 오래전부터 고객의 비밀번호를 직원들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들은 고객정보 보호를 생명처럼 지키고 있다.

고객의 재산과 정보를 보호하지 못하는 은행은 부실은행이나 다를 바 없다. 은행 경영자들은 합병을 통해 덩치 키우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은행 경영의 내실을 다지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 내부 직원들의 불법과 탈법 행위를 단속하지 못하는 은행이라면 문을 닫을 각오를 해야 한다.

뒷북 대책을 들고 나온 금융감독원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금감원은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마다 준법 감시인을 둔다고 법석을 떨었건만 금융사고는 갈수록 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사고가 늘어난 금융사의 경영진을 사퇴시키겠다고 했는데 비난 여론 피하기가 아니라면 일벌백계하는 실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금감원 출신을 금융사 감사로 내려보내는 ‘낙하산 인사’나 일삼으면서 과연 금감원이 은행들을 감독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 보아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